기원전 2000년 초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중국에는 세 개의 왕조가 이어져 통치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황허(黃河) 유역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샤(夏)·상(商)·주(周) 왕조는 중국 영토를 개척하고 민족의 뿌리를 형성한 핵심 동력이 되었습니다.
실은 왕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훨씬 전인 기원전 2900년 무렵부터도 중국인의 것으로 알려진 중요한 발명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물레(陶車)로, 항아리를 성형하는 데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놀랍게도 오늘날에도 물레는 흙그릇을 만드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샤 왕조(기원전 2200년~기원전 1750년)
세 왕조 중 가장 오래된 샤 왕조는 기원전 2200년부터 기원전 1750년까지 황하 유역에서 통치했습니다. 다만 사학자들이 확보한 실물 증거가 많지 않아, 이 시기는 전설과 역사가 뒤섞인 시대로 여겨집니다. 샤 왕조는 황하의 큰 홍수를 막은 공으로 유명한 우(禹)임금, 곧 '위대한 우'의 치세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샤 시대의 중국에서는 농업, 상업,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정착민들은 황하 기슭에 집을 짓고 땅을 경작하는 한편 가축도 함께 길렀습니다. 또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만드는 비단이 처음 등장한 것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샤 왕조의 사회
샤 왕조 시기에는 모두 17명의 임금이 통치했습니다. 샤 왕조는 중국인의 사회 조직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결혼 제도를 정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문자의 원형이 되는 기호 체계 또한 이때 싹텄는데, 후계 왕조인 상 왕조(기원전 1750년~기원전 1040년)가 이를 한층 발전시켰습니다.
상 왕조(기원전 1750년~기원전 1040년)
상 왕조의 학자들은 동물 뼈와 청동기에 새겨 넣는 문자 체계를 발달시켰습니다. 이 시기 사람들은 청동기를 폭넓게 활용했으며, 매우 정교한 사회 조직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상 왕조의 도자기 항아리
연구자들은 기원전 12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이 새겨진 청동 그릇들을 발굴해냈습니다.
상 왕조 사회는 귀족, 도성 거주민, 농민으로 계층이 나뉘었습니다. 왕권은 종교적 권위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으며, 상인들은 다신교를 믿고 죽은 자가 신이 된다고 믿었습니다.
상 왕조의 마지막 수도는 기원전 1300년경 안양(安陽)에 위치해 있었으며, 그 흔적은 지난세기에야 비로소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주 왕조(기원전 1100년~기원전 771년)
주변 세력의 압박으로 점차 약해진 상 왕조는 주 왕조로 대체됩니다. 주 왕조는 기원전 1100년부터 771년까지 중국을 다스렸으며, 원래 상 왕조의 동맹 세력으로서 지금의 산시(陝西) 지역에 살았던 민족이었습니다.
기원전 1050년 무렵 벌어진 결정적인 전투는 상 왕조의 멸망을 확정지었고, 중국을 이른바 '황금기'로 이끌었습니다. 이 평가는 매우 효율적이었던 주 왕조의 통치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기원전 771년, 주 왕이 속국 부족 출신 인물들에게 살해당하면서 왕권은 크게 흔들립니다. 아들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결국 동쪽으로 피신해야 했고, 왕조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주 왕조는 중국 문명의 근간을 마련한 창건자로 평가받으며, 이른바 '중앙의 왕국(Middle Kingdom)'이라 불리는 시대에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주 왕조는 최초의 철제 무기를 제작하여 국경 방어에 크게 기여했는데, 바로 이 시기가 중국의 '철기 시대'입니다.

주 왕조의 항아리
주 왕조 시기를 빛내는 인물 중 단연 돋보이는 존재는 공자입니다. 공자는 기원전 600년경에 태어나 중국은 물론 세계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힙니다. 공자의 학설인 유교는 전통적인 위계 질서, 예(禮)와 의례, 효심, 어른 공경을 핵심 가치로 강조합니다.
제국 중국의 시작
약 250년에 걸친 격렬한 전쟁 끝에 기원전 221년, 진시황(秦始皇)이 드디어 통일 중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진시황제의 통치는 제국 중국 시대의 막을 열었으며, 화폐·도량형·문자의 통일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만리장성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원전 210년에 세상을 떠난 진시황제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약 1만 개의 도자기 병사가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라코타 군단', 즉 병마용(兵馬俑)입니다. 병사들은 대량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고유한 얼굴과 개별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어 전 세계의 경탄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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