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기 수세기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전파한 기독교 사상은 다양한 분파를 낳았고, 이는 훗날 기독교의 가장 큰 약점이 되었습니다. 이들 분파 간에는 피비린내 나는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라틴 계열의 기독교는 로마에서 더 큰 인기를 얻었는데, 라틴 분파 중 일부는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성인의 우상을 만들어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을 숭배한 반면, 같은 분파 내의 다른 이들은 우상 숭배에 반대했습니다.
로마 주교의 영향력 상승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로마를 떠나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면서, 베드로 교회의 주교가 로마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이를 공식 종교로 삼자, 로마의 통치자들은 주교와 협력하고 그의 명령을 받아들여야 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의 라틴 분파 신도들과 콘스탄티노플 신도들 사이에서 우상 숭배를 둘러싼 갈등이 극에 달했고, 결국 라틴 분파는 두 갈래로 분열되었습니다. 이 분열 이후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기존 라틴 분파, 즉 '가톨릭(공교회)'이라 불렀고, 콘스탄티노플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그리스 분파'라 칭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콘스탄티노플 교회를 '정교회(Orthodox Church)'라고 불렀습니다.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로마 주교가 제시하는 종교적 해석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고, 기독교 고대 교리의 어떠한 변경도 부적절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로마에서 교황의 등장
로마의 성 베드로 라틴 교회, 즉 훗날 '가톨릭 교회'로 알려진 이곳은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지닌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교회의 주교는 라틴 분파의 수장으로 간주되었으며, 후에 이 주교는 '로마 교황'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교황의 지도 아래 라틴 교회의 영향력은 북유럽과 서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교황(Pope)이라는 명칭은 '파파(Papa)', 즉 '아버지'에서 유래했으며, 교황이 수행하는 종교적 직무는 '교황직(Papacy)'이라 불렸습니다.
점차 교황의 권위는 로마 제국 안에서 막강해졌습니다. 누군가 교황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거나 교황이 내린 종교적 해석과 다른 견해를 말하려 하면, 교황은 그 사람을 기독교 공동체에서 추방해 버렸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 해도, 심지어 한 왕국의 왕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추방된 왕은 다시 신앙 공동체에 들어오기 위해 무거운 속죄를 해야 했고, 교황에게 막대한 금전을 바쳐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황은 자신을 지극히 강력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고, 기회만 닿으면 콘스탄티노플 황제에게까지 도전장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총대주교의 등장
아마도 콘스탄티노플 황제들의 후원 덕분에, 로마 교황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항하는 콘스탄티노플 교회가 등장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교회는 '우니(그리스) 분파'라고도 불렸으며, 그 중심지는 콘스탄티노플에 남았습니다. 이 교회는 동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습니다. 정교회의 주교, 즉 동방 기독교인의 수장은 '총대주교(패트리어크)'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총대주교의 존재 아래에서는 로마 교황이 콘스탄티노플 황제에 대해 어떠한 종교적 조치도 취할 수 없었고, 황제를 신앙에서 배제시켜 제위에서 몰아낼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종교재판소(인퀴지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야 성장하기 시작했고, 그의 제자들 역시 오랫동안 정부의 감시를 피해 숨어 지내야 했기 때문에, 기독교 초기에는 확고한 철학적 사상, 원칙, 규율, 전통이 형성될 수 없었습니다. 이 종교의 신도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들 사이의 사상적·신학적 차이 또한 함께 커져갔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오직 교황만이 기독교를 구현하고 해석할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교황이 아닌 다른 사람이 기독교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내놓는다면 그것은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조치의 핵심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독교 안에 각양각색의 사상이 번성하여 종교의 본질이 더러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종교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 '종교재판소(Inquisition)'라 불리는 법적 기구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종교 재판소였으며, 그 임무는 종교적 불신앙을 막고 종교에 대해 제멋대로의 사상을 퍼뜨리는 자들을 처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조직은 처음 프랑스에 설립되었고, 이후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등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종교적·철학적 해석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자유로운 견해를 마음껏 표출하자, '종교재판소'라 불리는 기구의 법령은 점점 더 가혹해졌습니다.
결국 이 기구는 지나치게 엄격해져서 사소하고 하찮은 독립적 사상조차 드러내면 사람들을 산 채로 화형시켰습니다. 이 재판소는 수백 명의 여성들을 마녀로 규정하고 처형에 이르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