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유럽 열강의 향료 제도 무역 패권 경쟁과 동남아시아의 식민지화

인도와 동인도 제도의 초기 무역

인도는 굽타 시대 이전부터 동인도 제도(인도네시아 군도)와 활발한 교역을 이어왔습니다. 16세기 무굴 제국이 인도에 들어서면서도 이 무역은 큰 방해 없이 지속되었습니다. 인도의 주요 수출품은 면직물, 곡물, 유지 종자, 수수, 설탕, 쌀, 인디고, 향료, 향목·향초, 장뇌, 정향, 코코넛, 각종 동물 가죽, 코뿔소와 표범 가죽, 백단목, 아편, 후추, 마늘 등이었습니다. 이 물품들은 자바, 수마트라, 보르네오, 말라야, 아라칸, 페구, 시암, 마르타반 등 동방 국가들은 물론 유럽 국가들로도 수출되었습니다. 특히 아편은 당시 페구(하부 버마), 자바, 중국, 말라야, 페르시아, 아랍 국가들로 대량 반출되었습니다.

유럽 국가들의 해상 패권 경쟁

포르투갈의 선점과 독점

15세기 말, 유럽 각국은 원거리 교역을 위해 새로운 항로 개척에 나섰습니다. 그중에서도 소국 포르투갈이 가장 앞서 나갔습니다. 포르투갈은 페르시아만의 호르무즈에서 말라야의 말라카, 인도네시아의 향료 제도(몰루카 제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연안 지대를 장악했습니다. 이들은 교역 우위를 지키려 다른 유럽 국가들과 치열하게 싸웠으며, 해상 약탈과 노략질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영국의 한 역사가가 지적했듯, "포르투갈은 교역을 주업으로 삼았으나, 영국인과 네덜란드인처럼 기회만 되면 약탈을 마다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의 한계와 스페인과의 합병

포르투갈은 인구 100만 명의 소국이었기에, 페르시아만에서 동방 향료 제도에 이르는 광대한 해상 교역망을 장기간 유지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16세기 후반, 영국·네덜란드·프랑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독점에 맞서 투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두 나라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내부적으로도 갈등을 겪었고, 결국 1580년 스페인이 포르투갈을 병합했습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결성

독일과 벨기에 사이에 위치한 소국 홀란드(네덜란드) 상인들은 오랫동안 동방 향료 무역에 종사해 왔습니다. 이들은 포르투갈 시장에서 향료를 사들여 북유럽에 되파는 중개 무역을 해왔으나, 스페인에 포르투갈이 넘어가자 독자적인 항로 개척이 절실해졌습니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가 인도 및 동인도 제도와의 직접 교역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와 영·란의 진출

포르투갈 합병으로 스페인이 해상에서 위세를 떨쳤으나, 1588년 영국이 스페인 무적함대(Armada)를 격파하면서 판도가 바뀌었습니다. 이 승리로 영국과 네덜란드 상인들은 동인도 제도로 향하는 항로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동방 진출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영국은 인도·스리랑카·말라야를 장악했습니다. 인에서는 고아·다만·디우를 제외한 모든 포르투갈 거점이 상실되었습니다. 프랑스도 포르투갈·네덜란드·스페인·영국처럼 해상 패권을 노렸으나, 국내 혼란으로 경쟁에서 밀려났습니다. 1604~1619년 두 차례 프랑스 동인도 회사를 세웠으나 실패했고, 루이 14세 치하에서 재상 콜베르(Colbert)가 1664년 세 번째로 회사를 설립하여 인도와 동인도 지역에서 무역·식민 건설·기독교 전파를 맡겼습니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향료 제도 쟁탈전

포르투갈은 1511년 말라카를 점령한 뒤 동인도 제도에서 우위를 점했습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포르투갈 시장에서 향료를 구매해 왔으나, 1580년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병합되고 1588년 스페인이 영국에 패하자 독자적으로 동방으로 향했습니다.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설립 후, 이들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향료 시장으로 빠르게 진출했습니다. 곧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을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605년 암보이나(Amboyna) 장악, 1619년 자카르타 정복 후 바타비아(Batavia) 건설, 1639년 인도 고아 포위, 1641년 말라카 탈환, 1658년 실론(스리랑카) 내 마지막 포르투갈 거점 접수 등 연이은 승전을 거두었습니다. 네덜란드는 인도 동해안(코로만델), 벵골, 비하르, 오리사, 구자라트 등에 무역 거점을 두고 향료, 니름(인디고), 생사, 유리, 쌀, 아편 등을 주로 거래했습니다. 네덜란드는 1759년 베다라 전투(Battle of Bedara)에서 영국에 패해 인도에서 몰락했으나, 동인도 제도에서의 지배권은 유지했습니다.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지배와 수탈

18세기 중반, 자바의 마타람 이슬람 왕조는 영토와 주권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넘겨야 했습니다. 174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자바의 실질적 통치자로 올라섰습니다. 네덜란드는 동남아시아 제도를 혹독하게 수탈했습니다. 16~18세기 네덜란드는 유럽 최고의 부국으로 군림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인들은 수세기 동안 주식인 벼농사를 지어왔으나, 네덜란드는 이들을 강제 동원해 사탕수수와 커피를 재배하게 하여 국제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챙겼습니다. 그 결과 식량 부족과 기아가 이 군도 전역에 퍼졌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의 인도네시아

1789~1799년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집권기, 프랑스는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동아시아·중아시아의 여러 섬을 점령하여 프랑스 주권을 선포했습니다.

영국의 일시적 지배와 빈 회의

1811년, 영국은 나폴레옹으로부터 인도네시아를 빼앗았으나 8년만인 1819년 빈 회의(Vienna Congress) 결정에 따라 인도네시아 전역을 네덜란드(홀란드)에 반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