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진나 이후의 파키스탄: '인도 공포'로 결속된 국가

진나 이후의 파키스탄:  인도 공포 로 결속된 국가

"파키스탄 지도자들에게 이슬람이 위험하다!"

파키스탄 지도자들의 '위기 선동' 정치

파키스탄 건국 초기의 지도자들은 국민을 무슬림 연맹(무슬림 리그)의 통제 아래 결속시키고 유지하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가 필요했다. 그래서 파키스탄의 무슬림 연맹 지도자들은 '인도'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겁주기 시작했다.

"인도는 우리의 물을 막고 있다", "인도는 우리의 무기를 끊었다", "인도는 우리의 돈을 가로챘다", "인도는 카슈미르를 빼앗았다", "인도는 하이데라바드, 보팔, 주나가드를 무력으로 점령했다", "인도는 언제든 파키스탄을 침공할 것이다" — 이런 종류의 주장들이 파키스탄 지도자들의 연설, 기자회견, 사적인 대화를 지배했다.

이로 인해 파키스탄 국민들 사이에는 인도에 대한 특수한 공포증이 형성되었다. 파키스탄 지도자들의 연설에서는 "인도가 존재하는 한 파키스탄의 이슬람은 위험에 처해 있다"는 논리가 반복해서 내세워졌다. 마치 인도의 어머니들이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알 수 없는 귀신이나 바바(baba)의 이름을 대며 겁주는 것과 같았다. 알 수 없는 공포와 테러의 그림자가 파키스탄인들의 마음 위에 드리워 있었다.

수라와르디의 경고

독립 후 불과 7개월 만에 벵골 출신 지도자 후세인 샤히드 수라와르디(Hussain Suhrawardy)는 파키스탄 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이 나라는 위험한 길로 들어섰습니다. 여러분은 무슬림의 감정을 부추기고 결속시키기 위해 파키스탄이 위험하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 자신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파키스탄은 감정만으로, 이슬람이 위험하다는 느낌만으로, 파키스탄이 위험하다는 정신만으로 기초를 삼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수라와르디는 무슬림 연맹 지도자들이 '침공의 유령'을 보여줌으로써만 지배할 수 있는 국가를 만들고 있으며, 그러한 국가가 하나로 묶여 있으려면 파키스탄과 인도 간의 지속적인 갈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런 국가는 필연적으로 위험과 의심으로 가득 차게 된다. 실제로 오늘날까지도 파키스탄은 인도에 대한 분노를 국가 정체성의 축으로 내세우고 있다.

진나 사후, 이슬람주의자들의 공세

진나의 후계자는 독재와 편협함에 있어서 진나를 능가하게 될 운명이었다. 파키스탄계 작가이자 저명한 언론인 타레크 파테(Tarek Fateh)는 이렇게 기록했다.

"진나 사후, 이슬람주의자들은 전면적인 공세에 나섰다. 파키스탄 건국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파키스탄의 수호자가 되었다. 현대적 헌법에 대한 모든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 세계 각지의 이슬람주의자들이 파키스탄에 모여 칼리프 체제의 또 다른 국가를 세우겠다는 꿈을 꾸었다. 이집트의 이슬람주의자 사이드 라마단(Said Ramadan)은 파키스탄의 이슬람화를 위해 카라치를 방문했고, 폴란드 출신 개종자 무함마드 아사드(Muhammad Asad)는 국가 존립과 관련된 핵심 이론들을 기록하는 임무를 맡았다. …… 파키스탄 고유의 언어들은 외면되었고, 아랍어를 파키스탄의 국어로 만들자는 안이 준비되었다…… 파키스탄인들이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언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선거 결과마저 무효화한 독재

1948년 진나가 사망한 후 파키스탄의 전체주의 모델은 더욱 강화되었다. 1949년 5월, 동파키스탄 탕가일(Tangail) 보궐선거에서 무슬림 연맹 후보가 신흥 정당에게 패배하자 리아카트 알리(Liaquat Ali) 총리는 선거 결과를 승인하지 않고 새로 선출된 제헌의회 의원과 여러 야당 활동가들을 함께 감옥에 보냈다. 그중에는 유명한 공산주의 지도자 모니 싱(Moni Singh)도 있었는데, 그는 22년간 감옥 생활 또는 지하 활동을 이어야 했다. 그가 비로소 자유를 되찾은 것은 1971년 파키스탄이 분열되면서였다.

'인도 늑대가 왔다' — 반복되는 선전 구도

파키스탄 통치자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국민을 인도에 대해 선동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국민의 시선을 정부의 어두운 실태에서 인도로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구호가 등장한다. 아유브 칸(Ayub Khan)이 그랬고, 야히아 칸(Yahya Khan)도 그랬으며, 아마도 모든 통치자가 앞으로도 같은 방식을 반복할 것이다. 증오는 죽게 두지 않고 오히려 키운다.

'힌두스탄의 늑대가 왔다, 늑대가 왔다!' — 그곳의 모든 독재자와 모든 물라(mullah, 이슬람 성직자)는 이러한 명분으로 국민을 속이면서 정작 자신들은 크림과 버터를 누린다. 이것이 바로 그곳의 통치자들이 국가 건설에 대해서는 적게 말하고 이슬람의 부흥에 대해서는 더 많이 말하는 이유이다. 스스로 21세기에 살면서도 국민이 16세기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