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가 독립을 눈앞에 둔 1947년 여름, 토후국들의 귀속 문제를 둘러싼 숨바꼭질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영국 측 정치부의 콘라드 코필드는 토후국들을 인도 연방에서 떼어놓으려 공작했고, 파키스탄은 국경 지역 토후국의 병합을 노리고 있었다. 이에 맞서 사르다르 파텔과 V.P. 메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코필드의 분열 공작
콘라드 코필드는 인도 정부 정치부 장관(Secretary)으로서 토후국들을 '진정한 인도'로 여기며 깊은 연민을 느꼈던 인물이었다. 그는 거주관(레지던트)과 정치 담당관(정치 에이전트)을 통해 토후들에게 인도 연방에서 분리된 채 남으라고 부추겼다. 코필드의 바람은 하이데라바드를 필두로 최소한 두세 개 국가가 국민회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동시에 나머지 토후국들 역시 인도에 가입하기 최대한 어렵게 만들려 했다. 코필드는 토후국들에 "앞에 놓인 길은 두세 개가 아니라, 두 자치령 중 한곳에 가입하거나 아예 독립을 유지할 수도 있다"고 선전했다. 그의 노력 끝에 트라반코르와 하이데라바드는 어느 자치령에도 가입하지 않고 독립국으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강철의 사내' 파텔, 토후국부를 이끌다
코필드가 만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1947년 7월 5일, 사르다르 파텔의 지휘 아래 토후국부(States Department)가 발족되었다. 국민회의는 이른바 '강철의 사내' 파텔이 도티 자락을 걷어 올리고 왕들을 상대하러 나설 것이라 기대했다. 하미둘라 칸, 코필드, 라마스와미 아이예르 등의 계획에 맞서 독립을 선언한 토후국들을 인도 연방 안으로 포섭하는 일에는 파텔 단 한 사람으로도 충분히 무게감 있는 존재였다.
V.P. 메논은 파텔의 고문 겸 비서로 임명되었다. 토후국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관리로 평가받던 인물이었다. 파텔의 강렬한 카리스마와 메논의 유연한 두뇌가 결합하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이 발휘될 것이 분명했다. 무대 뒤에서는 사르다르 K.M. 판니카르, V.T. 크리슈나마차리 같은 노련한 정치인과 인도 각 토후국의 저명한 각료, 그리고 C.S. 벤카타차르, M.K. 벨로디, V. 샹카르, 판디트 하리 샤르마 등 인도 문관부(ICS) 출신 고위 관료들이 실무를 떠받치고 있었다.
"파키스탄은 국경 지역의 몇몇 토후국을 병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다. 상황은 우리가 큰 어려움 끝에 쟁취한 자유가 토후국이라는 문턱에서 상실될 수 있는 위험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 파텔이 메논에게
세 개 분야만 통합하자는 제안
독립일까지 남은 시간은 다섯 주였다. 한편으로 코필드는 영국 통치가 끝나기 전에 토후국들로부터 중앙 권력의 흔적을 지워 버리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군대, 우편 등 기존의 모든 조치가 하나씩 취소되어 갔다. 다른 한편 파텔은 8월 15일 이전까지 영국이 없애 버린 왕들의 제반 권익을 어떻게 유지하라고 말해야 할지 난처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
이때 메논이 해법을 내놓았다. 왕들에게 세 개 분야의 통합만 요청하자는 것이었다. 국방, 외교, 교통·통신. 파텔의 승인을 받은 메논은 마운트배튼 총독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마운트배튼은 이를 받아들였다.
1947년 7월 5일, 파텔은 토후들에게 호소했다.
"1947년 8월 15일 이전에 인도 연방에 가입해 달라. 토후국들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세 가지 사항, 즉 국방·외교·교통을 연방에 넘겨야 한다. 이는 내각 사절단 계획 당시 이미 승인했던 바이다. 인도 연방은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으며, 토후국의 내정에 간섭할 의도가 없다. 토후국부가 토후국을 다루는 정책은 결코 권위주의가 아닐 것이다. 국민회의는 결코 왕들의 반대편에 서 있지 않았다. 토후들은 언제나 애국심과 공공복리에 대한 신념을 보여 왔다."
파텔은 또한 왕들에게 경고했다. "어떤 왕이든 영국의 종주권이 자신에게 이전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오일 것이다. 주권은 오직 국민에게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선언은 왕들에게 공존을 기반으로 인도에 가입하라는 초대장이었다. 사르다르 자신의 말대로, 이 제안은 과거 토후국들이 영국 정부와 맺었던 종속 조약보다 훨씬 나은 조건이었다.
첫 수를 둔 파텔과 메논, 그리고 왕들의 반응
이렇게 해서 파텔과 메논은 토후국의 인도 연방 편입을 위한 첫 번째 수를 두었다. 비카네르의 마하라자 사두르 싱은 즉시 파텔의 선언을 환영하며, 형제 왕들에게 내밀어진 우정의 손을 잡고 국민회의에 전폭적으로 힘을 보태 인도가 목표에 빨리 도달하도록 하자고 촉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왕들은 파텔보다 코필드의 말을 듣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