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직하지 못한 심판
일부 영국 역사학자들은 국민회의파(콩그레스)와 무슬림 연맹 사이의 갈등에서 영국이 중립적인 '심판' 역할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달랐다. 당시까지 영국 세력은 무슬림 연맹 쪽에 더 기울어져 있었다. 마치 공정하지 못한 심판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기회가 될 때마다 몰래 두 번의 펀치를 날리듯 행동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펀치'는 대개 국민회의파에게 꽂혔다. 국민회의파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인도의 독립을 이루고자 했지만, 무슬림 연맹은 파키스탄 요구를 통해 인도 독립의 길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몬트배튼 계획의 등장
인도 지도자들과의 논의 끝에 몬트배튼 총독은 인도 분할 계획을 마련했는데, 이것이 소위 '몬트배튼 계획'이다. 그는 1947년 5월 초, 로드 이즈메이와 함께 이 계획서를 런던으로 보내 영국 정부의 승인을 받으려 했다. 이 계획에서 몬트배튼은 인도가 두 개의 독립국가 형태로 독립하되, 하나는 파키스탄이 되고 다른 하나는 인도가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히 파키스탄의 영토는 영국이 아니라 인도인 스스로 결정하게 하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또한 영국령 11개 주 각각에는 파키스탄에 합류할지 인도에 합류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독립된 권리가 주어졌다. 어느 주의 국민이 원한다면, 그 주는 인도와 파키스탄 어느 쪽에도 가담하기를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독립국가가 될 수도 있었다. 몬트배튼이 이렇게 설계한 이유는 인도든 파키스탄이든 어떤 체제도 백성들에게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파키스탄에 들어가고 싶은 자는 파키스탄으로, 인도에 합류하고 싶은 자는 인도의 일부가 되며, 양쪽 모두와 별개로 남고 싶은 자는 기꺼이 독립적으로 남으면 된다는 논리였다. 이 결정 과정은 영국령 각 주에서 오랫동안 운영되어 온 입법 의회를 통해 진행될 예정이었다.
565개 토후국의 운명
몬트배튼은 같은 방식을 인도에 흩어져 있던 약 565개 토후국에도 적용하려 했다. 즉, 각 토후국은 인도에 합류할지, 파키스탄에 합류할지, 독립을 유지할지, 혹은 여러 토후국이 연합해 별도의 나라를 세울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몬트배튼은 내각 선임단(캐비닛 미션) 계획을 무시하고, 파키스탄 건국을 위한 크립스 선임단의 위험한 노선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발칸반도처럼 찢어질 뻔한 인도
이것은 나라를 산산조각 낼 수 있는 매우 위험한 계획이었다. 이대로라면 인도는 발칸반도의 작은 국가들처럼 흩어져 버리고, 하나의 통일된 '인도'라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었다. 영국이 떠난 후, 영국령 각 주와 수백 개의 토후국들은 서로의 피를 탐내는 별개의 국가 집단이 되었을 것이다. 국민회의파 지도자들도 무슬림 연맹 지도자들도 그런 형태의 독립 인도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통일된 하나의 인도가 실현 가능해질 때까지는 영국 통치 아래에서 독립을 기다리는 편이 낫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던 중, 몬트배튼이 인도-파키스탄 분할 계획서를 영국으로 보낸 어느 날, 그는 이 계획 초안을 자와할랄 네루에게 보여주었다. 그 무렵 네루는 이미 몬트배튼의 부인 에드위나와 매우 친밀한 관계가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담배를 피우고, 함께 여행을 다니며, 차를 마시고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인도 정치에 대해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몬트배튼은 영국식 교육을 받고 자유사상과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네루라면 이 계획을 보고 솔직하게 동의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자와할랄 네루는 이 계획을 보고 격분했다.
네루의 분노와 계획 철회
그는 통일 인도의 임시 총리였고, 통일되고 독립된 인도의 총리 자리가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계획이 통과되면 그 자리는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만약 이 계획을 받아들였다면, 그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나라의 총리가 되었을 것이다. 이 계획에 따라 생겨날 약 600개의 나라 가운데 그를 총리로 추대할 나라는 거의 없었을 테니까.
결국 네루는 극도로 강경한 어조로 이 계획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자와할랄의 답변을 들은 몬트배튼은 실망했지만, 런던으로 보낸 계획을 취소하겠으며 곧 새로운 계획을 마련해 다시 보여주겠다고 직접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