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무슬림 연맹의 비밀 무장 조직과 펀자브 학살: 파키스탄 건국 이면의 진실

무슬림 연맹의 비밀 무장 조직과 펀자브 학살: 파키스탄 건국 이면의 진실

진나(Muhammad Ali Jinnah)는 영국 총리 애틀리(Clement Attlee)의 선언을 통해 더 이상 누구도 파키스탄 건국을 저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모든 돌발 상황에 대비하고자 했습니다. 만약 파키스탄 건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 진나는 무슬림들을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철저히 준비시켰습니다. 그의 다음 수는 매우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는 정당 포럼에서 행해지는 정치 연설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파키스탄은 무슬림 연맹이 지난 7년간 준비해 온 '무슬림 국가방위대(Muslim National Guard)'라는 날카롭고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게 됩니다. 이 조직은 이미 '직접 행동(Direct Action)' 과정에서 그 위력을 성공적으로 입증한 바 있었습니다.

무슬림 국가방위대의 조직화

1940년 6월 15일 봄베이(현 뭄바이)에서 열린 무슬림 연맹 전당대회에서는, 무슬림들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각 주(州) 무슬림 연맹에 무슬림 국가방위대를 조직·강화하라는 지침이 하달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무슬림 연맹이 조만간 내전을 일으킬 것임은 명백해 보였습니다.

무슬림 국가방위대는 각종 무기를 활용한 전투, 찌르기, 습격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 부대를 위해 대량의 무기가 수집되었고, 인도군에서 제대한 무슬림 병사들이 연맹의 군대로 대거 영입되었습니다. 이 군대는 계속 확장되며 군사 장비로 무장해 갔습니다.

조직은 두 개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무슬림 연맹 자원봉사단(Muslim League Volunteer Corps)'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무슬림 국가방위대'였습니다. 국가방위대는 무슬림 연맹의 비밀 조직으로, 회원 자격 자체가 기밀이었으며 자체 훈련소와 본부를 운영했습니다. 회원들은 폭동 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몽둥이, 창, 칼 사용법 등의 군사 훈련과 지침을 받았습니다. 무슬림 국가방위대의 부대 지휘관은 '살라르(Salar)'라고 불렸습니다.

국가방위대의 키 큰 대원들은 무장한 채 진나 곁을 지키며 그의 경호를 담당했습니다. 1947년 1월, 펀자브 경찰은 라호르에 있는 무슬림 국가방위대 사무실을 급습하여 다수의 강철 헬멧, 배지 및 군사 장비를 발견했습니다.

무슬림 국가방위대는 자체적인 트럭과 지프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 차량들은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거주 지역 공격이나 단독 여행객 약탈에 동원되었습니다. 방위대 대원들은 항상 휘발유를 소지하고 다녔는데, 이는 방화에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급증하는 병력과 정치적 압박

1947년 4월, 펀자브 정부 수석 비서 아크타르 후세인(Akhtar Hussain)은 펀자브 총독에게 무슬림 연맹이 5,630명의 방위대원을 모집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15일 후의 보고서에는 무슬림 연맹 국가방위대의 규모가 약 39,000명에 달한다고 밝혀졌습니다. 불과 2주 만에 병력이 7배 가까이 팽창한 셈입니다.

무장 준비와 병행하여, 무슬림 연맹은 장차 파키스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주(州)의 정부와 입법부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삼 주는 무슬림이 다수가 아니었음에도, 무슬림 연맹은 이곳을 파키스탄에 포함시키려 했습니다.

무슬림 연맹은 이러한 주에서 힌두교도들을 추방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힌두교도들이 스스로 지쳐 원하는 형태의 파키스탄을 승인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잠정정부에서 인도와 파키스탄 간 국가 재산 분할이 논의되던 시기에도, 무슬림 연맹은 마운트배튼 플랜(Lord Mountbatten Plan)을 무산시키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공동 성명과 배신

진나와 간디는 공동 성명을 발표해 양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상호 우의를 유지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무슬림 연맹의 이러한 성명은 힌두교도들의 눈을 가리는 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무슬림 연맹은 그 성명을 무시한 채, 진나가 파키스탄에 편입시키고자 했으나 마운트배튼 플랜에 따라 파키스탄에 귀속되지 않은 인도의 지역들을 무력으로라도 차지하려는 움직임에 나섰습니다.

펀자브에서는 지난 10년간 힌두교도, 무슬림, 시크교도가 함께 참여하는 연합당(Unionist Party)의 말리크 키즈르 하야트 칸(Malik Khizar Hayat Khan) 연립정부가 집권해 왔습니다. 그러나 연맹 활동가들로 인해 펀자브의 치안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1947년 3월 2일 하야트 칸 정부는 사임해야 했으며, 총독은 무슬림 연맹 정부를 구성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