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파키스탄 사상에 대한 자와할랄 네루의 공격

파키스탄 사상에 대한 자와할랄 네루의 공격

런던에서 라마트 알리가 진나를 부인하고 있던 바로 그 시기, 인도 본토에서는 자와할랄 네루가 급성장하는 무슬림 연맹의 '병행 정치'를 강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네루에게 인도 정치의 무대는 오직 국민회의(Congress)만이 차지해야 할 곳이었다.

네루의 도발적 선언

1937년, 인도 정부법(Government of India Act)의 규정에 따라 주(州) 입법의회 선거가 실시되었을 때 네루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 나라에는 단 두 개의 세력만이 존재한다. 바로 정부와 국민회의다. …… 국민회의에 반대표를 던진다는 것은 영국의 지배를 받아들이겠다는 표를 던지는 것과 같다. …… 오직 국민회의만이 정부에 맞설 수 있다. 국민회의 반대파들의 이해관계는 서로 얽혀 있으며, 그들의 요구는 대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진나의 즉각적인 반격

이 발언에 진나는 크게 분노했고, 이후 네루를 굴욕시킬 기회라면 어떤 것이든 놓치지 않았다. 그는 즉각 반박했다.

"나는 국민회의를 지원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 나라에는 제3의 세력이 존재하며, 그것은 바로 무슬림이다."

그리고 며칠 뒤 진나는 네루와 국민회의에 냉소 섞인 경고를 날렸다. "무슬림들에게서 손을 떼라."

네루의 재반박

네루는 이렇게 응수했다.

"진나 씨는 벵골의 무슬림 문제에 국민회의가 간섭하는 것에 반대하며, 국민회의는 무슬림들에게서 손을 떼라고 말했다. …… 어느 무슬림들을 말하는가? 명백히 진나 씨와 무슬림 연맹의 추종자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무슬림 연맹의 목표는 무엇인가?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반제국주의적인가? 내 생각에 아니다. 무슬림 연맹은 확실히 저명한 인사들이 많은 무슬림 한 파벌을 대표할 뿐이다. 이들은 상류·중산층의 상층부 원에서 활동할 뿐 무슬림 대중과는 아무런 접촉이 없다. 하위 중산층 무슬림들과도 거의 관련이 없다. 진나 씨는 알아야 한다. 나는 무슬림 연맹의 대다수 의원들보다 무슬림들과 훨씬 더 많은 접촉을 해왔다는 사실을."

이 연설 한 달 후, 진나는 인터뷰에서 신랄하게 되물었다.

"모든 일에 참견하는 이 국민회의 의장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온 세상의 짐을 자기 어깨에 지고 있는 듯하다. 제 할 일이나 돌볼 것이지, 모든 일에 발을 들이밀어야 할 필요라도 있다는 건가?"

'이슬람이 위험하다'는 구호의 등장

네루는 회유 정치가 아닌,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는 수천만 무슬림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는 연설을 통해 진나와 무슬림 연맹을 계속 공격했다. 네루의 이러한 발언에 진나와 무슬림 연맹은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진짜 가난한 무슬림 대중이 네루와 국민회의의 말에 끌려갈까 두려웠던 것이다.

무슬림 연맹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명백했다. 잠자고 있던 무슬림 대중을 깨워 선동하고, 자신들의 지도 아래 결집시키는 것. 그 방법이란 바로 '이슬람이 위험하다(Islam is in danger)'는 구호였다. 오직 종교(deen)의 문제를 들어 올려야만 무슬림 연맹은 국민회의와는 별개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었다.

1937년 선거 결과

1935년 인도 정부법의 규정에 따라 치러진 1937년 선거에서 국민회의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국민회의는 마드라스, 봄베이, 연합주(United Provinces), 비하르, 중앙주(현 마디아프라데시), 오리사에서 절대 다수를 확보했고, 벵골·아삼·북서 변경주에서는 제1당으로 부상했다. 펀자브와 신드에서만 상대적으로 득표율이 낮았다.

11개 주에 배정된 무슬림 예비석 482석 가운데 국민회의는 26석, 무슬림 연맹은 108석을 얻었고, 무소속 무슬림 후보들이 128석을 차지했다. 펀자브에서는 연합당(Unionist Party)이 최다 의석을 확보했으며, 벵골에서는 파즐룰 하크의 프라자당이 38석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