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인도 분할의 서막: 진나의 '해방의 날' 선언과 라마트 알리의 '디니아' 구상

인도 분할의 서막: 진나의  해방의 날  선언과 라마트 알리의  디니아  구상

'피르푸르 보고서'와 '샤리프 보고서', 그리고 '해방의 날'

1939년, 무슬림 연맹이 국민회의(콩그레스)에 대해 제기한 혐의를 담은 '피르푸르 보고서(Pirpur Report)'가 발표되었다. 이어 비하르 지역 콩그레스 정부의 잘못된 통치 실태를 폭로하기 위한 '샤리프 보고서(Sharif Report)'도 잇달아 나왔다.

같은 해 콩그레스 각료들이 일괄 사임하자, 진나는 무슬림들에게 1939년 12월 22일을 '해방의 날(Mukti Diwas, Day of Deliverance)'로 기념하라고 호소했다. 억누르던 콩그레스 정부가 마침내 물러났기 때문이다.

라마트 알리의 '디니아(Dinia)' 구상

1940년, 라마트 알리(Rahmat Ali)는 '이슬람의 밀라트와 인도주의의 위협'이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발표했다. 그는 이 글에서 무슬림들이 반드시 별도의 독립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마트 알리는 'INDIA'라는 단어의 철자를 재배열해 '디니아(Dinia)'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는데, 그 의미는 곧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를 기다리는 아대륙'이었다.

라마트 알리는 벵골과 아삼을 묶어 '방구시 이슬람(Bangush-e-Islam)'이라 명명했다. 이는 '이슬람의 방구시'라는 뜻으로, 방구시는 벵골 지방의 무굴 제후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는 또한 비하르를 '파루키스탄(Farukhistan)', 우타르프라데시를 '하이데리스탄(Hyderistan)', 라지푸타나를 '모이니스탄(Moinistan)'으로 불렀다. 특히 모이니스탄은 수피 성자 크와자 무인우딘 치슈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하이데라바드는 '오스만리스탄(Osmanistan)'으로, 말라바르의 몹라(Moplah) 거주 지역은 '모팔리스탄(Mopalistan)'으로 명명했으며, 이 밖에도 '사피스탄(Safistan)'과 '나스리스탄(Nasristan)' 지역까지 구상에 넣었다.

디니아(인도) 지도에 표시된 비무슬림 지역들은 무슬림 왕국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무력하고 쓸모없는 파편처럼 보였다. 라마트 알리의 상상 속에서 이들은 무슬림 국가와의 대립 속에서 태어난 '힌두 인도'였고, 이 힌두 인도를 동화시키고 개종시키며 정복해 나가는 것을 국시로 삼는 존재였다.

1942년 라마트 알리는 또 다른 소책자 '밀라트와 그 사명(Millat and His Mission)'을 저술했다. 그에 따르면 인도가 완전히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무슬림의 지배를 받는 것은 곧 인도의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쏟아져 나온 인도 분할안

인도 분할을 두고 각양각색의 안건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이들은 라마트 알리의 계획에 따라 펀자브, 신드, 북서 변경주, 발루치스탄, 카슈미르만을 인도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들은 압둘 라티프(Abdul Latif)의 안을 지지했다. 이 안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주들 외에 벵골과 하이데라바드를 추가로 분리해 무슬림 국가를 세워야 했는데, 이 국가는 인도 전체 무슬림의 국가가 될 예정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라마트 알리 역시 입장을 바꾸어, 인도의 모든 주에서 무슬림에게 자치국을 주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는 무슬림 연맹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이러한 계획들에 고무된 진나는 1940년 2월 인도 정부에 강경한 요구를 전달했다. 연맹의 사전 허가 없이는 어떠한 개혁안도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무슬림 연맹은 무슬림을 위한 별도 국가에 관한 공식 결의조차 채택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1940년 3월 6일 알리가르에서 연설하면서 진나는 이렇게 선언했다. "힌두-무슬림 합의는 오직 평등의 원칙 위에서만 가능하지, 간디가 제시한 조건 위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평등'은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민주주의 체제 자체에 반대했다. 그의 논리는 이러했다. "비무슬림에게 결정권을 주는 민주주의를 이슬람은 믿지 않는다."

힌두-무슬림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내세운 핵심 명분은, 미래 인도 행정부에서 무슬림이 대등한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는 조건을 점차 강화하면서도 표현은 부드럽게 포장해, 미래 인도 연방의 중앙 및 주 의회에서 힌두교도와 무슬림에게 동수의 의석을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요구는 어떤 민주적 원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었다. 결국 타협의 여지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