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은 3세기의 위기를 맞으면서 내전과 변경 지대의 혼란에 시달렸습니다. 지방 분권화가 극에 달하자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을 동서로 나누어 통치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이번 글에서는 로마 제국의 분열 과정과 서로마 제국의 멸망까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원수정에서 전제정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284년 군인황제 시대를 종식시킨 인물입니다(재위 284~305). 병사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노력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시 혼란의 원인을 영토 확장과 지방 분권 통치, 그리고 국가에 대한 소속감 부재에서 찾았습니다.
이에 황제 권력을 강화하고 황제를 신격화하기로 합니다. 구체적으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로마 신화의 최고신 유피테르의 아들임을 스스로 선언했습니다. 동양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여 로마 제국의 정치 체제는 원수정(Principate)에서 전제정(Dominate)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통치와 사두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제국을 동서로 나누고 각 지역에 정제(正帝)와 부제(副帝)를 두어 통치했습니다. 이른바 사두정치(Tetrarchy)입니다. 이를 통해 제국의 정치 질서를 회복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역량을 지닌 인물로, 덕분에 로마 제국의 멸망이 늦춰졌다고 평가받습니다. 다만 능력이 너무 뛰어난 탓에 사두정치는 그의 재위 기간에만 잘 작동했고, 은퇴 후에는 권력 다툼이 벌어지게 됩니다.
한편 그는 3세기 무렵 약자들을 중심으로 제국 전역에 퍼진 기독교에 대해 대박해를 감행합니다. 앞서 말했듯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스스로를 신의 아이라 칭하며 황제 숭배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유일신만을 인정하는 기독교와는 양립할 수 없는 종교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대박해로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신들에게 예배할 수 없게 되었고(초기에는 황제 숭배만 하면 용인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병사들이 잇달아 탈영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정치
디오클레티아누스 다음으로 로마 제국의 중심에 선 인물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입니다(306~337). 일단 사두정치의 형태는 유지되었지만, 황제들이 서로 왕좌를 빼앗고 빼앗기는 싸움(일부는 군대를 이끌고 직접 싸우기도 했습니다) 끝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바로 콘스탄티누스였습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전임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달리 박해받던 기독교를 포용하는 길을 택했다는 점에서 크게 달랐습니다. 로마 황제가 직접 기독교를 숭배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며, 이후 기독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써 그는 다음과 같은 효과를 노렸습니다.
- 제국의 통합
- 병사 탈영 감소와 군대 강화
동시에 자신의 거상을 세워 압도적 권위를 과시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권위를 드러내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업적으로서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수도 건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흑해와 에게해 사이에 있던 비잔티움이라는 도시를 자신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로 개명하고 새 수도로 삼았습니다.
또한 재정 기반을 개선하기 위해 콜로누스(colonus)를 토지에 묶어두는 정책을 폈습니다. 이를 통해 세수 유실을 막고 하층 민중의 신분과 직업을 세습하게 만들었습니다. 황위에 관해서도 친족이 계승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거대한 관료제를 통해 관리들의 권력이 강화되었습니다. 황제는 이러한 관료들을 통해 제국을 전제 통치하게 됩니다.
여기서 로마는 시민의 자유로운 사회를 끝내고 관료제에 기반한 신분 사회로 이행하게 됩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
게르만족은 이미 3세기부터 용병이나 콜로누스의 신분으로 제국 내로 이주해 오고 있었습니다(동고트족과 서고트족 등 수십 개 부족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런데 375년, 또다시 대규모 침입이 시작됩니다.
4세기에 사회가 변모하면서 로마 제국은 군대와 관료를 유지하기 위해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습니다.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던 속주들이 잇달아 반란을 일으키면서 민족 대이동은 로마 제국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고, 제국은 큰 혼란에 빠집니다.
애초에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훈족'이라 불리는 기마 민족이 동방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훈족의 계통과 이동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데, 한 설에 따르면 중국에 있던 흉노의 분열이 그 시작이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또 유연(柔然)이라는 나라가 흥기하고 식량 부족으로 인해 이동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 식량 부족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실제 삼국시대의 혼란이 한랭화의 산물이었다는 『기후 변화와 유목민으로 이해하는 중국사』 같은 책이 도움이 됩니다.
서쪽으로 이동한 훈족은 게르만족이 살던 지역을 압박했고, 게르만족은 당구공처럼 밀려나며 로마 제국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혼란 끝에 로마 제국은 395년 동서로 분열됩니다. 종래의 사두정치와는 달리 완전히 별개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비잔틴 제국과 서로마 제국의 탄생
테오도시우스 1세(재위 379~395)에 의해 395년 분할된 로마 제국은 다음 두 나라로 나뉩니다.
-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
- 서로마 제국
게르만족의 대이동에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은 비잔틴 제국은 도시 경제가 여전히 살아 있었고 1453년까지 존속했습니다. 반면 이탈리아 반도를 포함해 수도를 로마에 둔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이동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서로마 제국은 결국 476년, 게르만계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합니다.
이렇게 해서 로마 문화를 계승하던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함께 로마 제국의 역사는 막을 내리고, 여러 나라가 난립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