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으로 가는 길: 주요 연대기
- 1788년 12월 17일, 국왕이 삼부회(Etats Généraux) 소집을 공식 선언하다.
- 1788년~1789년, 각 신분별로 불만 사항과 요구를 담은 진정서(카히에 드 돌레앙스)를 작성하다.
- 1789년 3월~4월, 왕국 전역에서 삼부회 대표 선거가 치러지다.
- 5월 5일, 루이 16세가 왕국을 잠식해 가던 경제 위기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삼부회를 소집하다. 성직자 신분, 귀족 신분, 제3신분의 대표들이 메뉴플레지르 회관에 모였다.
- 6월 17일, 표결 방식(신분별 표결 vs 인원수 표결)을 놓고 의견이 대립하자 제3신분 대표들은 스스로를 '국민의회'로 선포했다. 이 의회는 같은 해 7월 9일 '헌법제정의회'로 이름을 바꾼다. 삼부회가 왕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판단한 국왕은 크게 불쾌해 했고, 곧 왕실군 개입 소문이 파리에 퍼져 나갔다.
1789년 6월 20일

등장 인물
- 루이 16세 — 당시 프랑스의 국왕
- 장 시르벵 바이 — 파리 대표, 맹세문을 낭독
- 아베 시예스 — 제3신분 대표, 국민의회 선포를 주도
-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 — 제3신분 대표, 훗날 혁명의 핵심 인물
- 미라보 백작 — 뛰어난 웅변가로 명성이 높던 제3신분 대표
사건의 경위
국왕의 명령으로 삼부회 회의장이 폐쇄되자, 파리 대표 바이가 이끄는 제3신분 대표들은 1789년 6월 20일 인근의 정구장(쥬 드 포름 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바이가 낭독한 맹세문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왕국에 헌법을 제정하기 전까지는 결코 해산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그러자 동료 대표들은 "맹세한다!"라고 힘차게 화답했다.
이 행위는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는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몇 달 뒤에는 그 열기가 파리의 거리로 번져 나갔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는 이 프랑스 역사상 중대한 장면의 정수를,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 해에 구상한 미완성 대작으로 그려냈다. 그의 그림은 전례 없는 일체감이 넘치던 그 순간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 준다.
영향과 결과
- 테니스 코트의 맹세는 국민의회가 대변하는 인민 주권이 왕권을 서서히 눌러 내리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 6월 23일, 루이 16세는 절대 군주제의 원칙을 재확인한 뒤 회의장을 비우고 신분별로 심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제3신분 대표들만이 회의장에 남아 다시금 왕권에 맞섰고, 왕의 무장 부대는 언제든 개입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 6월 27일, 제3신분 대표들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 앞에서 국왕은 마침내 세 신분이 함께 헌법을 기초하도록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