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퐁텐블로 칙령은 어떤 방식으로 낭트 칙령의 규정을 뒤집었나요?

퐁텐블로 칙령 – 낭트 칙령을 폐지하다

1685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가 반포한 퐁텐블로 칙령(Edict of Fontainebleau)은 1598년 앙리 4세가 발표하여 위그노(Huguenot, 프랑스 개신교도)에게 종교적 관용을 허용했던 낭트 칙령(Edict of Nantes)을 공식적으로 폐지한 칙령입니다. 두 칙령의 내용을 비교하면 퐁텐블로 칙령이 낭트 칙령의 규정을 어떤 방식으로 정면으로 뒤집었는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낭트 칙령: 위그노에게 보장된 종교의 자유

  • 위그노가 지정된 특정 지역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 위그노에게 시민권과 공직에 임명될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 개신교 법정을 설립하고, 개신교 학교와 아카데미의 운영을 허용했습니다.

퐁텐블로 칙령: 낭트 칙령의 전면 철회

  • 위그노의 공개 예배 권리를 박탈했습니다.
  • 프랑스 내 모든 개신교 교회의 파괴를 명령했습니다.
  • 개신교 학교와 아카데미의 설립·운영을 금지했습니다.
  • 모든 위그노 아동을 가톨릭 신자로 양육하도록 강제했습니다.
  • 위그노의 프랑스 출국을 금지함으로써, 낭트 칙령이 보장하던 '이주의 자유' 조항마저 철회했습니다.

칙령 폐지의 역사적 의미

이처럼 퐁텐블로 칙령은 낭트 칙령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 시민적 권리, 교육 기회, 이주의 자유 등 거의 모든 규정을 하나씩 뒤집었습니다. 그 결과 수십만 명의 위그노들이 밀입국·밀출국을 감수하며 네덜란드, 프로이센, 잉글랜드, 스위스 등으로 망명했고, 숙련 장인과 상인 대거 유출로 인해 프랑스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퐁텐블로 칙령은 종교적 불관용이 한 나라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