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마노프 황가의 최후, 이파티예프 저택 — 왕가가 살해된 집

로마노프 황가의 최후, 이파티예프 저택 — 왕가가 살해된 집

1918년, 몰락한 러시아 제국의 황실 가족은 시베리아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의 한 저택에 유폐되었다.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이 머문 곳은 상인 니콜라이 이파티예프의 소유였던 저택으로, 훗날 간수들이 '특수 목적 저택'이라 불렀던 바로 그곳이다.

높은 울타리에 둘러싸인 감옥

저택 주변에는 목책이 세워졌는데, 그 높이가 너무나 높아 안에서는 밖에 자라는 나무의 끝부분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가족들이 도착한 며칠 후에는 간수들이 방들의 벽 타일을 하얗게 칠해 버렸다. 이는 감시를 용이하게 하고 벽면의 낙서나 숨겨진 메시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택 안에서 맞은 마지막 생일

이 집에서 6월에는 알렉산드라 황후(46세)와 딸들인 타티야나(21세), 마리야(19세), 아나스타시아(17세)가 각자의 생일을 축하했다. 포로 신분이었지만 그들은 나름의 일상을 유지하며 희망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7월 14일에는 현지 사제 스토로제프 신부가 불려와 미사를 집전했다. 그는 황실 가족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본 마지막 인물 중 한 명이 되었다.

1918년 7월 16일 밤, 지하실의 비극

그로부터 사흘 뒤, 7월 16일에서 17일로 넘어가는 밤, 로마노프 가족과 그들의 시종들은 '특수 목적 저택'의 지하실에서 처형당했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 다섯 자녀 올가·타티야나·마리야·아나스타시아·알렉세이, 그리고 의사와 하인들까지 모두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철거된 역사의 현장

비극 이후 이 저택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혁명 박물관과 반종교 박물관으로 운영되다가, 1977년 10월 혁명 60주년을 앞두고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이곳이 반혁명 세력들의 순례지가 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철거 명령을 내린 사람은 당시 스베르들롭스크 지역 공산당 서기였던 보리스 옐친, 즉 훗날 러시아 연방 대통령이 되는 인물이었다. 오늘날 그 부지에는 로마노프 가족을 기리는 '피의 교회(Church on the Blood)'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