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정치의 탄생 배경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이 발효되면서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정권의 초석(keystone)'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헌법에는 중요한 예외 조항이 있었는데, 바로 대통령이 의회(국민의회와 상원)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이른바 '동거(cohabitation)'라고 불리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이 외교 분야로 축소되고, 국내 현안은 반대 진영 출신 총리가 주관하게 됩니다.
제5공화국 역사에서 이러한 동거 정치는 1986년, 1993년, 1997년, 총 세 차례 나타났습니다.
주요 인물
-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
-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 에두아르 발라뒤르(Édouard Balladur)
- 리오넬 조스팽(Lionel Jospin)
절차 및 경위
첫 번째 동거: 미테랑–시라크 (1986~1988)
1981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해 온 프랑수아 미테랑은 '엄정 전환(tournant de la rigueur)'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회주의에 환멸을 느낀 유권자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1986년 국민의회 의원을 새로 선출하는 총선이 실시되었는데, 이 선거는 제5공화국 최초로 비례대표제만으로 치러진 선거였습니다. 그 결과 우파가 과반수를 차지하면서 미테랑은 반대 진영에서 총리를 지명할 수밖에 없었고, 공화국연합(RPR) 소속인 자크 시라크를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특히 외교 문제를 둘러싸고 권력 최고위층에서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두 정상은 결국 합의점을 찾아냈고 국제 무대에서는 프랑스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협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관행들은 이후의 동거 정치에도 그대로 계승되었습니다.
두 번째 동거: 미테랑–발라뒤르 (1993~1995)
미테랑은 1988년 재선 이후 다시 사회당 성향의 의회와 함께 국정을 운영하게 되었지만, 1993년 총선에서 우파 의원들이 국민의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며 또다시 곤경에 처했습니다. 결국 미테랑은 반대 진영 출신 에두아르 발라뒤르를 총리로 임명했습니다. 두 행정부 수반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덕분에 이번 동거는 '벨벳 동거(cohabitation de velours)'라는 별칭으로 불렸으며, 1995년 미테랑의 두 번째 임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세 번째 동거: 시라크–조스팽 (1997~2002)
제5공화국의 세 번째 동거는 1995년 대통령에 당선된 자크 시라크의 임기 중에 일어났습니다. 시라크는 우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국민의회를 1997년 해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치러진 총선에서는 좌파 다수가 승리하면서 시라크는 어쩔 수 없이 반대 진영 출신 리오넬 조스팽을 총리로 임명해야 했습니다. 조스팽은 2002년 시라크의 첫 임기가 끝날 때까지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동거 정치가 남긴 결과와 제도적 변화
- 2000년: 대통령 임기가 7년에서 5년으로 단축되어 국회의원 임기와 기간이 같아졌고, 그 결과 동거 정치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 2002년: 선거 일정이 재편되어 대통령선거가 총선(국민의회 의원 선거)보다 먼저 치러지도록 바뀌었고, 두 선거가 같은 달에 실시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치 역시 동거 발생 가능성을 더욱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