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프셔(Banffshire)는 '밴프(Banff)'라고도 불리는, 스코틀랜드 북동부에 위치한 역사적인 카운티(county)입니다. 그램피언 산맥(Grampian Mountains)에서 북해(North Sea)까지 뻗어 있으며, 과거 카운티 청사 소재지였던 밴프를 포함한 북동부 지역은 현재 애버딘셔(Aberdeenshire) 자치구에 속하고, 나머지 지역은 모레이(Moray) 자치구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대 유적과 초기 침입자들
로마 시대에 이 땅을 차지하고 있던 픽트족(Picts)은 글렌리벳(Glenlivet)에서 발견된 카른(cairn, 돌무더기 무덤), 로티메이(Rothiemay)와 발린달로흐 성(Ballindalloch Castle) 근처 등지의 유적 외에는 거의 흔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카른'이라는 단어는 오늘날에도 이 지역의 수많은 지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군의 진격은 남쪽의 험준한 산맥에 가로막혀 사실상 중단되었지만, 글렌배리(Glenbarry)에서는 로마 진영으로 추정되는 유적을 지금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덴마크 침입자들은 더욱 집요하고 성공적이었으며, 스코틀랜드인들과 수차례 피비린내 나는 충돌을 벌였습니다. 960년에는 컬런(Cullen) 인근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몰라흐(Mortlach)에 있는 한 돌은 1010년 말콤 2세(King Malcolm II)가 노르스인(Norsemen)을 상대로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종교 개혁 이후의 격랑과 자코바이트 운동
종교개혁(Reformation) 이후 밴프셔는 끊임없는 소요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1594년에는 헌틀리 백작 6세(훗날 제1대 마르퀘스) 휘하의 가톨릭 세력이 글렌리벳에서 아가일 백작 7세가 이끄는 프로테스탄트 군대를 격파했습니다. 또한 1624년부터 1645년까지는 언약도(Covenanters)의 동원과 잦은 클랜(clan) 간 갈등이 얽히면서 사실상 끊이지 않는 전투의 시기가 이어졌습니다.
1689년 이후 밴프셔는 강력한 자코바이트(Jacobite) 지역으로 변모했습니다. 1715년 자코바이트 반란에 가담했던 많은 귀족들의 아들들이 1745년 반란에서 왕위 요구자인 '젊은 왕자' 찰스 에드워드(Charles Edward)를 지지했습니다. 다만 밴프셔 자체는 이러한 봉기의 직접적인 영향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이후 카운티는 점차 안정을 되찾았지만, 일부 지역은 로마 가톨릭 신앙의 거점으로 남았습니다.
산업혁명과 관광 산업의 발전
18~19세기의 산업혁명은 대부분 농업 중심이었던 이 카운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림 같은 해안선과 유려한 골짜기(glens), 그리고 구릉지대의 아름다운 경관은 19~20세기 관광 산업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