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카르눈툼 |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고대 로마 유적지

카르눈툼(Carnuntum): 다뉴브 국경을 지킨 로마 군단 주둔지

카르눈툼(Carnuntum)은 고대 로마 시대 상(上)다뉴브 국경 지역의 핵심 군단 주둔지였으며, 현재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동쪽으로 약 32km(20마일) 떨어진 페트로넬(Petronell) 일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군사 기지로서의 시작

기원후 6년,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가 마르코만니족(Marcomanni) 정벌을 준비하며 이곳을 거점으로 삼으면서 카르눈툼이 역사에 처음 모습을 드러냅니다. 본격적인 요새 건설은 클라우디우스(Claudius) 황제 때 이루어졌는데, 그는 한 개 군단을 수용할 수 있는 성채를 최초로 세웠습니다. 이후 서기 73년부터 76년 사이에 석조 건물들이 대대적으로 보수·정비되었습니다.

상판노니아 속주의 수도

106년 카르눈툼은 상판노니아(Pannonia Superior) 속주의 수도로 승격되며 정치적 위상을 높였습니다. 특히 철인황제로 불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마르코만니족 원정 중이던 172년부터 174년 사이에 이곳 머무는 동안 저서 『명상록(Meditations)』 제2권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번영을 누리던 도시는 마르코만니족의 공격으로 파괴되었지만 곧바로 재건되었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황제 치세에 이르러 옛 영광과 번영을 되찾았습니다.

삼황제 회담과 미트라 제단

308년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 갈레리우스(Galerius), 막시미아누스(Maximian) 세 황제가 이곳에서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들이 세운 미트라(Mithra) 신앙의 제단은 당시 종교와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습니다.

쇠퇴와 역사 속으로의 소멸

발렌티니아누스 1세(Valentinian I) 황제 역시 375년 게르만족 원정 중 카르눈툼에 머문 바 있습니다. 그러나 395년 게르만족의 대규모 침입은 카르눈툼의 운명을 결정지었고, 433년에는 판노니아 지역 전체가 훈족(Huns)에 넘어가게 됩니다. 이후 카르눈툼에 관한 기록은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며, 화려한 로마 도시의 흔적만이 오늘날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