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몽골제국의 역사: 칭기즈칸의 정복부터 원나라의 멸망까지

몽골제국의 탄생: 칭기즈칸

몽골제국은 1162년 테무진(Temujin)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칭기즈칸(Genghis Khan)이 세운 세계 최대의 육상 제국입니다. '칭기즈칸'이라는 칭호는 그의 군사적 업적을 인정받아 몽골 부족들의 왕, 즉 최고 지도자로 선출되면서 얻게 된 것으로, '칸(Khan)'은 곧 '최고 통치자'를 뜻합니다.

눈부신 속도로 이루어진 정복 사업

칭기즈칸은 뛰어난 군사 전략과 전술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 안에 광대한 영토를 정복해 나갔습니다. 1213년에는 몽골군이 만리장성을 돌파하여 중국 북방의 금나라(Jin)를 침공했으며, 이후에도 하나둘씩 주변 영토를 차지하며 판도를 넓혀 갔습니다.

칭기즈칸이 세운 제국은 최전성기에 이르러 세계 육지 면적의 약 22%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해졌습니다.

몽골제국의 역사: 칭기즈칸의 정복부터 원나라의 멸망까지

유럽까지 뻗쳤던 몽골의 기세

1227년 칭기즈칸이 사망한 후에도 정복 사업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결국 유럽, 즉 폴란드와 헝가리까지 이르렀습니다.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오고타이 칸(Ögödei Khan)은 러시아 대부분을 정복하고 헝가리를 함락했으며, 폴란드-독일 연합군을 격파한 뒤 이미 빈(Vienna)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인들은 운이 좋았던 셈입니다. 오고타이가 빈에 도달하기 전 갑작스럽게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몽골의 지배는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혼동된 '타타르'와 몽골인

흥미로운 점은 중세 시대에 몽골인들이 유럽인들에게 동유럽 출신 튀르크계 민족인 타타르(Tatars, Tartars)로 자주 오인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중세 역사 기록에서 '타타르'라는 표현이 등장할 때, 실제로는 몽골인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광대한 제국의 분할: 네 개의 칸국

영토가 너무 방대했기 때문에 제국은 다음과 같이 여러 '칸국(Khanate)'으로 나뉘어 통치되었습니다.

  • 대칸국(중국)
  • 차가타이 칸국(투르키스탄)
  • 일 한국(Ilkhanate, 페르시아)
  • 킵차크 칸국(금장한국, 러시아)

몽골제국의 역사: 칭기즈칸의 정복부터 원나라의 멸망까지

원나라의 성립: 쿠빌라이 칸

1271년, 칭기즈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Kublai Khan)이 대칸국의 영토였던 중국 땅에서 원(Yuan) 왕조를 선포했습니다. 원나라는 1279년부터 1368년까지 중국을 통치했습니다.

원 왕조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면서도 비교적 근래에 속하는 왕조입니다. 중국 역사상 마지막 세 개의 제왕조(원·명·청)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원나라 뒤를 이어 명(Ming) 왕조가 들어섰고, 그다음 청(Qing) 왕조가 1911년까지 존속한 뒤 중화민국이 수립되었습니다.

원나라의 황제들

  • 칭기즈칸 — 제국의 창시자
  • 오고타이 — 영토 확장 지속
  • 쿠빌라이 칸 — 원나라 초대 공식 황제
  • 테무르 칸
  • 카이샨
  • 아유르바르와다
  • 시디발라
  • 예순 테무르
  • 툭 테무르
  • 토곤 테무르 — 원나라 마지막 공식 황제이자 북원의 초대 황제
  • 아유시리다라 — 북원의 황제

몽골제국의 역사: 칭기즈칸의 정복부터 원나라의 멸망까지

홍건적의 난과 원나라의 멸망

원 왕조는 의외로 짧게 막을 내렸는데, 한때 자신들을 정복했던 이민족의 후예들에 대한 지배에 중국인들이 계속해서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1351년부터 1368년 사이에는 불교 교단의 추종자들이 이끄는 거대하고 피비린내 나는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반란은 '홍건적의 난(Red Turbans Revolt)'이라 불리며, 마침내 1368년 집권 왕조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왕조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황제 토곤 테무르는 아들이자 후계자인 아유시리다라와 함께 북쪽 몽골의 본토로 물러났고, 그곳에서 원 왕조의 잔여 세력은 '북원(Northern Yuan)'이라는 이름으로 17세기 청나라 건국 때까지 명맥을 유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