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호키아 마운드란?
카호키아 마운드(Cahokia Mounds)는 미국 일리노이주 남서부,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맞은편 미시시피강변에 위치한 광대한 고고학 유적지입니다. 총면적 약 13제곱킬로미터에 달하며, 원래는 약 16제곱킬로미터(6제곱마일)에 걸쳐 약 120개의 마운드(흙무덤)가 흩어져 있었으나 일부는 파괴되었습니다. 현재 약 70개의 마운드가 카호키아 마운드 주립역사공원(Cahokia Mounds State Historic Site) 안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1979년 8.9제곱킬로미터 규모로 지정된 이 공원은 198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카호키아의 역사
카호키아에는 기원후 700년경 처음 사람들이 정착했으며, 약 950년부터 1350년까지 약 4세기 동안 크게 번영했습니다. 전성기 인구는 최대 2만 명에 달했으며, 이는 멕시코 이북의 선사시대 아메리카에서 가장 광범위한 도시 중심지였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카호키아는 '중기 미시시피 문화(Middle Mississippian Culture)'의 핵심 중심지였습니다. '카호키아'라는 이름은 18세기 이 지역에 거주했던 일리노이 연합 부족에서 유래한 것으로, '야생 거위'를 뜻합니다.
도시 계획과 건축
이처럼 방대한 유적지를 설계하고 건설하며 유지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관리자와 대규모 노동력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카호키아는 행정·의례 기능 구역, 엘리트 주거지, 일반 주거 지역, 그리고 교외 지역까지 명확하게 구분된 도시 구조로 조성되었으며, 모든 구역이 동서남북 사방을 기준으로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약 16헥타르에 달하는 광활한 중앙 광장과 수많은 거대 토목 구조물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몽크스 마운드(Monks Mound)는 서반구에서 가장 큰 선사시대 토조 건축물로, 900년에서 1200년 사이에 피라미드 형태로 축조되었습니다. 높이 30미터, 면적 6헥타르 이상에 이르며, 약 7억 입방피트(약 2천만 입방미터)가 넘는 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카호키아 정부의 소재지였던 몽크스 마운드 정상에는 길이 약 30미터(100피트), 폭 약 15미터, 높이 약 15미터(50피트)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이 도시가 멕시코만, 애팔래치아, 오대호, 로키산맥 지역과 활발하게 교역했음을 보여줍니다.
농업과 생계 기반
카호키아 사회에는 전문 직업군도 존재했지만, 대다수 주민은 옥수수 재배를 중심으로 한 농업에 종사했습니다. 도시는 미시시피강의 주요 지류에 위치해 물류와 교통이 매우 편리했으며, 인근의 개방 수역과 습지 등 다양한 서식 환경은 주민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인 어류를 제공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지역에서 가장 넓은 비옥한 토지대가 바로 도시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 범람원과 인접한 충적지대를 따라 넓은 옥수수밭이 조성되었습니다. 도시 내부에서도 과거 인간 거주로 비올해진 토양 위에 다층 경작지와 가정 텃밭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러한 혼합 농업 방식은 분산된 인구에게는 성공적이었지만, 카호키아의 훨씬 밀집된 인구를 지원하기에는 결국 부적합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쇠퇴와 몰락
유적지와 그 배후지는 환경 악화로 인해 쇠퇴하여 결국 버려졌으며, 질병, 기후 변화, 사회적 스트레스, 전쟁 등도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인구는 연료와 건축 자재로 나무를 대량으로 소비하여 도시 초기 몇 세기 동안 상류 지역의 삼림을 벌채했습니다. 황폐화된 유역은 유출량과 침식을 크게 증가시켰고, 이례적인 여름철 홍수가 카호키아의 농경지를 덮치면서 농작물 실패와 전체 생산량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경제적·사회적 후폭풍은 참혹했고, 기근, 지도력에 대한 신뢰 상실, 토지 경쟁 격화, 지역 전쟁으로 치닫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시기 주민들은 목책 방어벽을 연달아 세우는 등 외부 위협에 대비했는데, 이는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외부의 위협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결국 도시는 버려졌고, 주민들은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 집단에 동화되었습니다.

발굴과 보존 노력
고고학자들은 19세기 말부터 카호키아를 연구해 왔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면적은 유적지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연구자들은 각 마운드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건설되었는지, 엘리트와 평민 거주지가 어떻게, 언제 형성되었는지, 노동자·장인·엘리트 등 다양한 계층이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그리고 카호키아가 교외를 포함한 배후지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규명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또한 카호키아에 거주했던 인구 수(추정치는 8,000명에서 40,000명)와 당시 사회의 직업 구성을 파악하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현장에는 해석 센터가 마련되어 있어 새롭게 재현된 마을 모형과 유적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보존 노력은 주립역사공원을 위해 더 많은 마운드 부지를 확보하는 것과,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 몽크스 마운드 동쪽과 서쪽 사면에서 발생한 대규모 사면 붕괴를 비롯한 마운드 침식 문제 해결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