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2차 세계대전

원인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전체주의 확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1930년대 독일의 팽창주의가 직접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은 독일인들에게 굴욕감을 안겨주었고, 1920년대 심각한 경제 위기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극우 급진주의의 부상을 가능하게 했고, 그 정점에 나치즘이 있었습니다.

나치는 베르사유 조약의 조건을 비판하고 독일의 재무장을 주장하며 공공연히 반유대주의를 표방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1919~1933) 나치의 성장은 아돌프 히틀러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이루어졌습니다.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 전체주의 정권을 수립하고, 경제 회복과 군대 재건에 주력했습니다. 군사력이 충분히 강화되자 생존권(Lebensraum) 확보라는 나치 이념에 따라 영토 확장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아리아인의 번영을 위해 슬라브인 등 '열등한 민족'을 착취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1930년대 후반 독일은 먼저 독일어권 국가인 오스트리아를 노렸습니다. 제1차 대전 후 양국의 통합 논의가 있었으나 베르사유 조약으로 금지되었습니다. 1938년 대규모 캠페인 끝에 안슐루스(Anschluss)로 오스트리아를 병합했습니다. 이어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요구하며 유럽의 외교적 긴장을 고조시켰습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을 피하고자 뮌헨 협정(1938)을 통해 독일의 주데텐란트 병합을 용인했습니다. 이들은 히틀러에게 이것이 '최후의 영토 요구'임을 약속받았으나, 히틀러는 이를 기만했습니다. 1939년 히틀러는 폴란드를 다음 목표로 삼았고, 영·프가 폴란드와 군사 동맹을 맺자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했습니다. 이 침공은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고, 며칠 뒤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참전국

제2차 세계대전은 수십 개국이 다양한 수준으로 참전한 총력전이었습니다. 주요 진영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연합국(Allies):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주력)
  • 추축국(Axis): 독일, 이탈리아, 일본(주력)

전쟁의 단계

제2차 세계대전

6년간 지속된 이 전쟁은 역사가들에 의해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 1단계 (1939~1941): 추축국의 우세 – 독일은 블리츠크리크(전격전)으로 유럽 국가들을 연달아 정복했습니다. 일본은 동남아시아로 진출해 영국·프랑스·네덜란드 식민지를 점령했고, 1941년 12월 진주만 공격으로 미국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 2단계 (1942~1943): 전세의 역전 –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이 소련에 격퇴되었고,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이 궤멸적 타격을 입으며 전세가 연합국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 3단계 (1944~1945): 추축국의 패배 – 연합군이 독일 본토를 포위·침공하고, 일본은 미군의 폭격과 원자폭탄 투하, 소련의 만주 침공 끝에 1945년 9월 항복했습니다.

주요 사건

전쟁은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폴란드는 수 주 만에 독일과 소련(독소 불가침 조약 비밀 의정서)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습니다. 주요 전개를 살펴봅니다.

블리츠크리크(전격전)와 '가짜 전쟁'

1939~1940년 초기에는 가짜 전쟁(Phony War)이라 불리는 소강 상태가 이어졌습니다. 1940년부터 독일은 전격전을 앞세워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그리스 등을 차례로 정복했습니다. 전격전은 기갑부대·공군·보병을 입체적으로 조율한 혁신적 전술이었습니다. 이 성공에 고무된 히틀러는 1941년 소련 침공을 결심했는데, 이는 전쟁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이 되었습니다.

소련 침공: 바르바로사 작전

제2차 세계대전

1941년 6월 22일 개시된 바르바로사 작전에는 300만 명 이상의 병력과 수천 대의 전차·항공기가 투입되었습니다. 전격전으로 초반 급속 진격에 성공했으나, '8주 내 소련 정복'이라는 목표는 소련의 완강한 저항과 독일의 보급난, 이중 전선 부담으로 좌절되었습니다.

1941년 말 독일은 세 주요 목표를 추구했습니다:

  • 레닌그라드: 포위 후 기아 전술로 항복을 유도했으나 1944년까지 함락하지 못했습니다.
  • 모스크바: 크렘린 30km 앞까지 접근했으나 전력 약화로 후퇴했습니다.
  • 스탈린그라드: 코카서스 석유 확보를 노렸으나, 병력 분산과 소련의 결사항전으로 제2차 대전 최대 규모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사상자만 약 200만 명에 달합니다.

스탈린그라드 패배로 독일은 물자·재정적으로 소련 전선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독일의 패배

스탈린그라드 이후에도 쿠르스크 전투 등에서 연이어 패퇴했습니다.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군이 축출되고 이탈리아 본토가 연합군에 침공당하자(1943), 무솔리니는 파르티잔에 의해 처형되었습니다. 동부전선에서는 소련군이 발트 3국, 폴란드, 헝가리 등을 수복하며 베를린으로 진격했습니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D-Day)으로 서부전선이 열리며 독일은 동서 양면 압박을 받았습니다. 1945년 4월 베를린이 함락되고 히틀러가 자살하자, 5월 독일은 무조건 항복했습니다.

일본의 패배

제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은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초기 우세는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정규 항공모함 4척을 잃으며 끝났습니다. 이후 과달카날, 필리핀, 오키나와 등에서 연패하며 본토로 밀려났습니다.

1945년 미군의 본토 폭격이 본격화되었고, 상륙 작전 대신 원자폭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되었으나 일본 정부는 즉시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8월 9일 소련이 만주 침공을 개시하자 상황이 급변했고, 9월 2일 일본은 정식 항복 문서에 서명하며 제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미지 출처

[1] Everett Historical and Shutterstock

참고 자료

  •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 – 제2차 세계대전 중 활동한 나치 학살 부대
  • 우스타샤(Ustasha) – 나치 지원을 받으며 크로아티아를 통치한 파시스트 정당
  • 브라질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 아시아 전선 주요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