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Österreichische Niederlande, 1713~1795)는 오늘날의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가 통치했던 남부 네덜란드의 여러 주를 가리킵니다. 이 지역은 과거 스페인령 네덜란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영토의 이양
1700년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왕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스페인 본토와 모든 스페인령 영토는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의 손자이자 부르봉가의 앙주 공작 필리프(훗날 스페인 왕 펠리페 5세)에게 상속되었습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가문, 네덜란드 공화국, 잉글랜드 등 유럽의 다른 강대국들은 프랑스 세력의 확장을 경계하여 이 계승을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1713년 체결된 위트레흐트 조약에 따라 스페인의 영토가 분할되면서, 스페인령 네덜란드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에게 넘어갔습니다. 이후 이 지역은 1795년까지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로 불렸습니다.
안트베르펀 조약과 통치 구조의 계승
1715년 체결된 안트베르펀 조약(통칭 '방벽 조약')은 오스트리아가 남부 네덜란드를 통치하더라도 기존 스페인 통치 시절의 행정 체계가 본질적으로 그대로 유지될 것을 규정했습니다. 달라진 것이라면 지역 통치의 공식 창구가 마드리드에서 빈으로 옮겨진 것뿐이었습니다. 당연한 군주였던 카를 6세는 전임 스페인 국왕들과 동일한 조약 의무를 부담해야 했으며, 도시와 각 주의 자치권,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위도 보존되었습니다. 이러한 조항 중 유일하게 추가된 내용은 프랑스의 침공에 대비해 네덜란드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경제 정책의 좌절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카를 6세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무역 회사 설립은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방해로 좌절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회사를 해산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왕위 계승 문제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딸 마리아 테레지아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1740년 그녀가 즉위하자마자 계승권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어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랑스는 프로이센의 도전을 틈타 1744년 플랑드르를 침공했고, 곧 림부르흐와 룩셈부르크를 제외한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 전역이 프랑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 지역은 1748년 아헨 조약 이후 오스트리아로 반환되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의 번영과 요제프 2세의 급진 개혁
마리아 테레지아의 통치 기간 동안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는 스페인 통치 초기처럼 다시 번영을 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측은 남부 주들의 공화정적 전통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1780년 어머니의 뒤를 이어 즉위한 요제프 2세는 계몽주의 이념을 백성들에게 강요하기 시작했습니다. 1783년에는 명상에만 몰두하는 수도회들을 폐지하고 무용하다고 선언했으며, 1786년에는 개별 종교 형제회를 하나의 단체로 통합했습니다. 신학교는 해체되고 국립 학교로 대체되었습니다. 1787년에는 스스로 준수할 것을 맹세했던 수백 년 묵은 특권들을 무효화하고, 백성들이 오랫동안 의존해 온 정부 평의회와 사법 기구까지 폐지했습니다.
백성들은 이러한 간섭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격렬한 반발로 인해 일부 포고령의 시행이 중단되었지만, 개혁의 정신 자체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반군 지도자들에 대한 탄압이 이어지면서 1789년 브라반트 주에서 혁명이 발발했습니다.
브라반트 혁명과 오스트리아 통치의 종말
브라반트 혁명은 한동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반군들은 공화국을 선포했으나 내분과 외부 압력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농민들은 혁명과 무관하게 황제를 계속 지지했습니다. 결국 공화국은 1년 만에 무너졌습니다. 1790년 요제프 2세가 사망하자 새 황제 레오폴트 2세가 모든 권리를 회복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이 제안이 여러 이유로 거부되자 오스트리아는 군사 행동에 나섰습니다.
1792년 프랑스 혁명군이 이 혼란 속에 진입하자 현지 주민들은 그들을 해방자로 환영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는 1792년에서 1793년 사이에 잠시 회복되었지만, 프랑스는 이 지역에 남을 뜻을 굳혔습니다. 결국 1795년 10월 1일, 일련의 자의적인 통치 끝에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는 프랑스에 병합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후, 이 지역은 네덜란드의 주들과 통합되어 네덜란드 연합왕국(1815)이 되었고, 1831년에는 마침내 독립된 벨기에 왕국이 수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