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슈(Marche)는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존재했던 프랑스의 역사적 지방(province)이다. 오늘날의 크뢰즈(Creuse) 주 대부분과 앵드르(Indre) 주 일부, 그리고 오트비엔(Haute-Vienne) 주 북부의 상당한 지역에 해당한다.
기원과 초기 역사
고대에 이 지역은 리무쟁(Limousin) 지방의 일부였다. 10세기 중반, 북방으로부터의 침입에서 푸아투(Poitou)와 아키텐 공국(Duchy of Aquitaine)을 방어하기 위한 변경백령(march)으로 분리·신설되면서 독자적인 지역이 되었다.
중세의 분할과 봉건 질서
12세기와 13세기에 걸쳐 푸아티에(Poitiers)에 직접 종속하는 봉토(fief)들이 연쇄적으로 형성되었고, 그 사이사이에 교회 소유의 영주권들이 산재하면서 마르슈는 사실상 서부와 동부로 양분되었다. 서부를 바스마르슈(Basse Marche, 하(下)마르슈), 동부를 오티마르슈(Haute Marche, 상(上)마르슈)라 불렀다.
백작위의 계승
마르슈 백작위는 1342년부터 1435년까지 부르봉(Bourbon) 가문의 방계가, 1435년부터 1477년까지 아르마냐크(Armagnac) 가문의 방계가 차례로 보유했다. 이후 부르봉 공작 피에르 2세(Pierre II)에게 넘어갔고, 다시 프랑스 대시종(왕실 대장군)이자 부르봉 공작인 샤를 드 부르봉(Charles de Bourbon)에게 전해졌다.
1527년 프랑수아 1세(Francis I)가 이 작위를 몰수한 뒤, 1574년부터 1643년까지는 프랑스 국왕들의 미망인에게 순차적으로 하사되었다. 17세기 말부터 구체제(Ancien Régime)의 종언에 이르기까지 마르슈 백작위는 콩티 공(prince de Conti) 가문의 아들들이 칭했다.
행정과 사법
행정 구분상 1586년부터 바스마르슈는 리모주(Limoges) 총감독관(intendant)의 관할 아래, 오티마르슈는 물랭(Moulins, 부르보네 지방) 총감독관의 관할 아래 놓였다. 한편 사법적으로는 지방 전체가 파리 고등법원(Parlement de Paris)의 관할에 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