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속주 아라비아의 성립
아라비아(Arabia)는 나바테아 왕국과 인접한 시리아 도시들인 게라사(Gerasa)와 필라델피아(Philadelphia, 오늘날 요르단의 제라시와 암만)를 포함하여 설립된 로마의 속주였다. 서기 105년,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Trajanus)가 나바테아 왕국을 정식으로 병합하면서 이 지역은 로마 제국의 새로운 속주로 편입되었다.
광활한 영토와 지리적 범위
속주 아라비아의 영토는 시나이 반도 서해안에서 시작하여, 오늘날의 시리아-레바논 국경 지대에 이르고 다마스쿠스 남쪽 경계선을 거쳐 홍해 동해안을 따라 헤자즈 지방의 에그라(Egra, 오늘날 마다인 살리흐)까지 뻗어 있었다.
2세기의 경제적 번영
아라비아 속주는 2세기에 걸쳐 눈부신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 남아라비아를 오가는 상단(商團) 무역과 향료 및 극동산 물자를 실어 나르는 해상 무역이 이 지역을 통과하면서, 아라비아는 로마에 막대한 수입원을 제공하는 핵심 거점이 되었다.
보스트라와 페트라: 행정과 종교의 중심지
로마인들은 최북단의 보스트라(Bostra, 오늘날 시리아의 부스라앗샴)를 속주의 수도이자 군단 주둔 기지로 삼았다. 한편 옛 나바테아 왕국의 왕도였던 페트라(Petra)는 여전히 종교적 중심지로서 그 위상을 유지했다.
또한 로마인들은 다마스쿠스에서 출발하여 보스트라, 게라사, 필라델피아, 페트라를 거쳐 아카바 만 연안의 아일라나(Aelana)에 이르는 도로를 건설했다. 이를 통해 속주 내 교통망을 더욱 강화했을 뿐 아니라, 동쪽 지역의 저항적인 베두인 부족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속주 개편
3세기 말,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는 아라비아 속주를 두 개로 분할했다. 북부 속주는 팔레스티나 지역의 아우라니티스(Auranitis)와 트라코니티스(Trachonitis)를 편입하여 확장되었으며, 보스트라를 수도로 삼았다. 남부 속주는 페트라를 수도로 두었다.
남부 속주는 콘스탄티누스 1세 대제(Constantine I the Great) 때 팔레스티나와 통합되어 '팔레스티나 살루타리스(Palaestina Salutaris)', 즉 '팔레스티나 테르티아(Palaestina Tertia)'로 불리게 되었으나, 357~358년경 다시 분리되었다.
후기 번영과 쇠퇴
두 속주의 도시들은 5~6세기에 뚜렷한 부흥기를 맞이하며 다시금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632~636년 아랍 세력의 정복 이후 이 지역의 도시들은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