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타운셔란?
위그타운셔(Wigtownshire)는 '위그타운 카운티'로도 불리는, 스코틀랜드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역사적 카운티입니다. 남쪽으로는 아일랜드해(Irish Sea)를, 서쪽으로는 노스 채널(North Channel)을 마주하고 있으며, 역사 지역 갤러웨이(Galloway)의 서부를 이룹니다. 오늘날 행정 구역상으로는 스코틀랜드의 덤프리스 앤 갤러웨이(Dumfries and Galloway) 자치의회 구역 안에 완전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철기 시대부터 초기 중세까지
위그타운셔 일대에는 철기 시대에 축조된 수많은 언덕 요새(hill fort)와, 호수 위에 목재로 세운 주거지인 크라노그(crannog)가 분포해 있어 고대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6세기 무렵 이 지역은 켈트계 브리튼인 왕국인 스트래스클라이드(Strathclyde)의 영토였습니다. 당시 인접한 앵글로색슨 왕국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세력과, 노스 채널을 사이에 두고 불과 21km 거리에 있는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스코트인(Scots)들이 이곳으로 침입하며 판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9세기에는 노르드인(바이킹) 침입자와 정착민들이 이 지역에서 패권을 장악합니다. 노르드인의 정복 이후 위그타운셔는 스코틀랜드 남서부 대부분을 아우르던 갤러웨이(Galloway) 지역의 일부가 되었고, 노르드계 왕들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중세 이후의 변천
1120년대에는 갤러웨이의 통치자 퍼거스(Fergus)가 8세기에 처음 설립되었던 주교구를 부흥시키고, 위더른(Whithorn)에 수도원(priory)을 세워 주교구의 대성당으로 삼았습니다. 퍼거스 후손들의 영지는 결혼을 통해 발리올(Balliol) 가문의 손에 넘어갔고, 이후 더글러스(Douglas) 가문이 약 1372년경 위그타운 카운티를 매입했습니다.
더글러스 가문 통치 하에서 오랫동안 독자적인 법 체계를 누려온 이 지역은 1426년 스코틀랜드의 일반법 체제에 편입되었습니다. 1455년 더글러스 가문이 몰락한 뒤에는 케네디(Kennedy) 가문이 위그타운셔를 지배했으며, 1470년대부터 17세기 초까지 지어진 수많은 성채가 오늘날까지 이 지역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근대와 현대의 위그타운셔
산업혁명의 물결은 이 카운티를 대체로 비껴갔고, 위그타운셔는 목축업 중심의 전원 지역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아름다운 해안선과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관광 산업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이 지역의 주요 거점으로는 카운티 타운인 위그타운(Wigtown)과 항구 도시 스트렌러(Stranraer)를 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위그타운은 '스코틀랜드 국립 북타운(National Book Town)'으로 지정되어 독특한 서점 마을로 명성을 얻고 있으며, 스트렌러는 한때 북아일랜드를 연결하는 페리 항구로 번영했습니다. 목축과 낙농이 여전히 지역 경제의 기반이지만, 고요한 자연과 깊은 역사를 찾는 방문객들이 꾸준히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