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바로아(Barrois) | 프랑스의 역사적인 백국

바로아(Barrois)는 로렌(Lorraine) 서쪽 경계에 자리한 옛 백국이자 훗날 공국으로, 신성 로마 제국 영역에 속한 지역이었다. 바로아는 오랫동안 제국의 봉토 또는 소유지로 남아 있다가 프랑스에 의해 단계적으로 흡수되었다. 그 중심지이자 수도는 오늘날 프랑스 뫼즈(Meuse) 주에 속한 도시로, 현재의 바르르뒤(Bar-le-Duc)로 알려진 곳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 흔들리는 충성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낀 지리적 위치 탓에 이 공국은 오랜 세월 동안 불안정한 충성 관계로 특징지어졌다. 951년 독일 황제 오토 1세(Otto I)는 아르덴의 프리드리히(Frederick of Ardenne)에게 바로아 백국, 즉 당시 로렌 공국의 봉토였던 '바(Bar)' 지역을 하사했다. 프리드리히의 고조손인 르노(Renaud)가 백작위를 상속받으면서 바 가문(House of Bar)이 개창되었다.

바 백작들은 재산을 불려나가며 로렌 공작들의 가장 강력한 가신(vassal)이 되었고, 로렌 공작들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다. 흥미롭게도 바 백작들은 대체로 프랑스 진영에 섰던 반면, 로렌 공작들은 독일 쪽에 붙어 있었다.

'바로아 무방(Barrois mouvant)'의 성립

앙리 3세(Henry III) 백작은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Edward I)와 독일왕 아돌프 폰 나사우(Adolf von Nassau)와 동맹을 맺고 프랑스에 맞섰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그 결과 1301년 앙리 3세는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Philip IV)에게 무즈(Meuse) 강 서쪽의 바로아 지역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이 지역이 자국에 대한 봉건적 종속(mouvance) 관계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후 이곳을 '바로아 무방(Barrois mouvant)'이라 불렀다.

공국으로의 격상과 로렌과의 통합

1354년 바의 로베르(Robert of Bar)가 바 공작(Duke of Bar) 칭호를 사용하게 되었다. 1420년에는 공국을 상속받은 앙주의 르네(René of Anjou)가 로렌 공작의 상속녀 이자벨라(Isabella)와 결혼하였고, 르네가 사망한 1431년 이후 바로아와 로렌은 하나로 통합되었다.

그때부터 바로아는 로렌과 같은 운명을 걷게 되었다. 전(前) 폴란드 국왕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Stanisław Leszczyński)가 1738년 로렌을 하사받았으나, 그가 1766년에 사망하자 로렌과 더불어 바로아 역시 프랑스 왕관에 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