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3제국의 역사: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부터 히틀러의 권력 장악까지

제3제국(第三帝國)은 1933년 1월부터 1945년 5월까지 독일을 통치한 국가사회주의(나치) 정권의 공식 명칭이다. 이 이름은 중세와 근세에 존재했던 신성로마제국(800~1806년, 제1제국)과 독일 제국(1871~1918년, 제2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붙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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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와 제3제국의 탄생

제3제국의 역사: 바이마르 공화국의 붕괴부터 히틀러의 권력 장악까지

1929년 대공황이 발발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은 재앙적인 경제 위기에 빠져들었다. 그 정치적 충격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사회민주당 출신 수상 헤르만 뮐러의 연립정부는 붕괴했고, 국민들이 온건 정당에서 등을 돌리면서 나치와 공산당은 당원 수가 급증했다. 1930년 7월, 로마 가톨릭 계열 중앙당 출신의 새 수상 하인리히 브뤼닝은 경제 정책 추진을 위해 바이마르 헌법 제48조에 따른 긴급명령권을 동원해야 했다. 며칠 뒤 그는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으며, 같은 해 9월 구성된 새 의회에서는 나치와 공산당의 의석이 크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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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닝은 강경 우파로 노선을 틀어 민족주의 세력을 달래며 집권을 이어갔다. 그러나 1932년 초 독일의 실업자 수는 600만 명을 넘어섰다. 1932년 3월 대통령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과반 득표에 실패했지만, 다음 달 치러진 결선에서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를 약 600만 표 차이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힌덴부르크는 브뤼닝을 물러나게 하고 싶어했지만 히틀러를 기용하는 것은 주저했고, 대신 프란츠 폰 파펜을 새 수상으로 지명했다.

의회 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파펜은 1932년 7월 조기 총선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 선택은 그의 취약한 정부에 재앙이 되었다. 나치는 의회에서 230석을 차지하며 제1당으로 부상했다. 파펜은 같은 해 11월 다시 선거를 치렀지만, 나치는 급성장하는 공산당과 알프레트 후겐베르크가 이끄는 독일 국가인민당에 표를 내주며 의석을 크게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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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정치적 교착 상태는 이어졌다. 1932년 12월 힌덴부르크는 파펜을 해임하고 쿠르트 폰 슐라이허 장군을 후임 수상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부총리직을 통해 여전히 권력과 영향력을 유지하던 파펜은 힌덴부르크를 설득해 히틀러를 정부에 끌어들이고, 의회 다수파와 연립정부를 구성하도록 만들었다. 합법적 절차를 통해 수상 자리에 오른다는 목표를 이룬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마침내 취임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주의 실험은 사실상 막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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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권력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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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내각에서 나치가 차지한 자리는 11석 중 단 3석에 불과했다. 히틀러가 수상을, 빌헬름 프릭이 제국 내무장관을, 헤르만 괴링이 담당 부처 없는 제국장관을 맡았다. 특히 괴링은 프로이센 내무장관직도 겸임했는데, 그는 이 자리를 이용해 독일 최대 규모의 경찰 조직을 나치화하고 게슈타포를 창설했다. 경제부와 식량·농업부는 제국과 프로이센 모두에서 민족주의자 후겐베르크가 담당했으며, 외무부는 보수 성향의 직업 외교관 콘스탄틴 폰 노이라트 남작이, 국방부는 베르너 폰 블롬베르크 장군이 이끌었다.

부총리로서 파펜은 수상이 대통령을 알현할 때마다 입회할 권리를 주장했고, 프로이센 제국판무관으로서 독일의 핵심 행정 기구를 통제했다. 그는 이를 통해 나치의 극단적 행동 가능성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의 판단은 곧 환멸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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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첫 번째 움직임은 내각을 설득해 의회 다수 확보를 위한 새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연립정부의 구성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확언으로 각료들의 반대를 무마했다. 선거일은 1933년 3월 5일로 정해졌고, 나치는 라디오를 포함한 국가 기관 전반을 장악한 권력을 총동원해 맹렬한 선거운동을 벌였다.

다른 정당들도 형식적으로는 활동이 허용되었지만, 그들의 집회는 무력으로 해산되고 연설자들은 폭행을 당했으며 신문들은 끊임없이 검열과 탄압을 받았다. 프로이센 경찰을 장악한 괴링은 경찰 조직을 나치 통제하에 두는 대숙청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는 또한 5만 명의 보조경찰을 소집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돌격대(SA)와 친위대(SS) 출신이었다. 경찰은 SA가 자행하는 수많은 공포와 협박 행위에 개입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SA에는 사실상 '거리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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