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중세의 몽상가, 빙엔의 힐데가르트

중세의 몽상가, 빙엔의 힐데가르트

교회 역사상 '교회학자(Doctor of the Church)'로 공식 인정받은 여성은 단 네 명뿐입니다. 이탈리아의 시에나의 카타리나, 스페인의 아빌라의 테레사, 프랑스의 리지외의 테레사, 그리고 2012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네 번째로 그 영예를 안은 독일의 빙엔의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입니다.

귀족의 딸, 은둔자 곁에서 시작된 삶

힐데가르트는 1098년 라인란트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덟 살 무렵부터 그녀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 살아가는 은둔자와 같은 방에서 지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들은 수도원 건물 안이 아니라 독립된 은둔소에서 생활했습니다.

환시에 시달린 소녀, 원장이 되다

어린 힐데가르트는 이내 강렬한 환시에 사로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이를 '생명의 빛'이라 불렀는데, 이 환시는 평생 그녀를 따라다니며 저술과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열다섯 살에는 베네딕토회 수녀의 베일을 두르고 정식 수도 생활에 들어갔고, 38세에는 이미 자신의 계시 덕분에 널리 알려진 수도원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자는 악마의 문"

그러나 당시 남성 중심의 교회는 그녀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세기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가 이미 "여자는 악마의 문"이라고 적었을 만큼, 여성의 영적 권위에 대한 경계는 뿌리 깊었습니다. 수사들은 그녀의 환시를 의심했고, 이에 힐데가르트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상세히 기록한 저서 『Scivias(길을 알라)』를 집필합니다. 이 책은 교황의 승인을 얻으며 그녀의 권위를 확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술가이자 치유자, 그리고 작곡가

힐데가르트의 업적은 종교 저술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교황과 황제를 비롯한 당대 유력 인사들에게 보낸 356통의 편지가 전해지며, 그녀는 고대 그리스 의학과 게르만 민간요법을 아우르는 치료법 모음집 『신적 피조물의 미묘함(Physica)』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뛰어난 작곡가였습니다. 70곡이 넘는 성가 선율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현대에도 연주되고 있으며, 그녀의 음악은 중세 음악의 백미로 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