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작센(Saxony) – 독일 역사를 관통한 지역, 공국에서 왕국까지의 변천사

작센(Saxony)은 독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로, 시대에 따라 그 의미와 범위가 크게 달라져 온 이름입니다. 역사적으로 작센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됩니다.

1. 세 시기로 보는 작센의 영토 변화

첫째, 1180년 이전에는 홀슈타인을 포함한 독일 북부의 광대한 지역을 가리켰으며, 특히 엘베 강 하구와 하류 유역의 서쪽·남서쪽 지방이 핵심이었습니다. 둘째, 1180년부터 1423년까지는 서로 멀리 떨어진 두 개의 훨씬 작은 지역, 즉 홀슈타인 남동쪽 엘베 강 우안(동안) 지역과 엘베 중류 지역을 의미했습니다. 셋째, 1423년부터 1952년까지는 엘베 상류 방향을 축으로 하는 독일 중부의 광대한 지역을 가리켰으며, 넓은 의미에서 튀링겐부터 보헤미아(현재 체코) 국경의 루사티아에 이르는 전 지역이 포함되었습니다.

2. 작센 부족과 프랑크 왕국의 정복

1180년 이전의 '작센'이라는 이름은 대략 기원후 200년경부터 700년경 사이 게르만족의 작센 부족이 정착한 지역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지역에는 홀슈타인과 엘베 강 하류 서쪽, 즉 오늘날 독일의 니더작센(Niedersachsen) 주에 해당하는 땅이 포함되었습니다. 5세기에는 작센족 일부가 바다를 건너 브리튼(영국)으로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8세기 말,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가 작센족을 정복하고 기독교로 개종시켰으며, 843년 작센은 동프랑크 왕국, 즉 독일 왕국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3. 리우돌핑 왕조와 오토 왕조의 등장

10세기 초 작센은 리우돌핑 왕조의 세습 공국이 되었고, 919년 작센 공작 하인리히가 독일 국왕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1024년까지 독일 왕관을 차지한 작센 왕조(오토 왕조)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오토 왕조 치세에 독일인들은 슬라브 영토를 향해 동진을 개시했습니다.

4. 공국의 해체와 분열

961년 작센 공작 작위는 빌룽(Billing) 가문으로 넘어가 1106년까지 유지되었고, 1142년에는 벨프 가문의 사자공 하인리히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1180년 하인리히가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에게 몰락하면서 공국은 해체되었습니다. 이후 '작센'이라는 이름은 두 개의 작고 멀리 떨어진 지역에만 남았습니다. 하나는 홀슈타인 남동쪽의 작센라우엔부르크, 다른 하나는 엘베 중류의 작센비텐베르크(오늘날 라이프치히 북쪽)였습니다.

두 지역은 처음에 아스카니아 가문 아래 통합되어 있었으나, 1260년 두 갈래의 아스카니아 계통으로 나뉘었습니다. 13세기 중반부터 작센 공작은 신성로마황제 선거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제국 선제후로 인정받았으며, 이 권리를 둘러싼 두 계통 간의 분쟁은 1356년 비텐베르크 쪽의 승리로 종결되었습니다. 한편 라우엔부르크 계통은 1689년까지 이어졌고, 이후 그 영지는 하노버에 흡수되었습니다.

5. 베틴 가문의 시대와 라이프치히 조약

1422년 비텐베르크 계통이 단절되자, 작센 공작위와 선제후직은 마이센 변경백이자 베틴(Wettin) 가문 출신의 프리드리히 1세에게 넘어갔습니다. 이후 '작센'이라는 이름은 오스터란트(라이프치히 주변 지역), 루사티아와 튀링겐의 상당 부분을 포함한 모든 베틴 가문의 영지에 적용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사후(1428년) 그의 후손들은 상속 분할을 두고 다투었고, 결국 1485년 프리드리히 2세(1464년 사망)의 아들들인 알브레히트와 에른스트가 라이프치히 조약을 체결하면서 작센 영토는 알브레히트 계통(동부)과 에른스트 계통(서부)으로 영구히 분리되었습니다. 알브레히트 쪽에는 수도 드레스덴을 둔 마이센 변경백령과 튀링겐 북부가 속했습니다.

6. 종교개혁과 작센의 전성기

16세기에 알브레히트 계통은 선제후직을 획득하고 튀링겐과 비텐베르크에서 에른스트 계통으로부터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선제후 하인리히(1541년 사망)와 모리츠(1553년 사망)는 루터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아우구스트(재위 1553~1586)는 알브레히트계 작센의 법률을 체계화하고 수도 라이프치히를 무역과 예술의 중심지로 육성했습니다.

요한 게오르크 1세(재위 1611~1656)는 30년 전쟁(1618~1648) 당시 독일 개신교 제후들의 연합 조직을 이끌었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작센은 점차 프로테스탄트 독일의 주도권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에 내주게 되었습니다. 1697년 선제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재위 1694~1733)는 폴란드 국왕(아우구스트 2세)에 즉위했는데, 쇠퇴하는 폴란드 왕국과의 이 결합은 1768년까지 지속되며 작센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안겼습니다.

7. 나폴레옹과 작센 왕국

1806년 나폴레옹이 작센을 정복하고 왕국으로 승격시켰습니다. 작센은 이후 나폴레옹의 가장 충성스러운 동맹국 중 하나였지만, 나폴레옹 몰락 후 열린 빈 회의(1814~1815)에서 승전국들에 의해 영토가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프로이센은 비텐베르크, 토르가우, 튀링겐 북부, 루사티아 대부분을 차지하여 프로이센의 작센 주로 편입했습니다. 축소된 작센 왕국은 독일 연방의 회원국이 되었습니다.

8. 근대와 현대의 작센

1830년 반란 이후 1831년 왕국에 헌법이 제정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재위 1836~1854)는 1848년 혁명 봉기로 잠시 권력을 잃었으나, 프로이센군의 개입으로 일주일 만에 복권되었습니다. 1871년 작센 왕국은 새로운 독일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이후 수십 년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회민주당이 작센에서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성장했습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하자 작센의 군주제는 폐지되었고, 작센은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 아래 자유주(Freistaat)로서 공화정 헌법을 채택했습니다. 이 지역은 히틀러의 제3제국(1933~1945)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 시기에도 하나의 주(Land)로 존속했으나, 1952년 공식 행정구역으로서는 폐지되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 동서독 통일의 결과로 작센 자유주가 다시 탄생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