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263미터, 배수량 6만 5천 톤을 넘어선 일본 제국 해군의 자랑, 전함 야마토(Yamato)는 인류 역사상 건조된 최대 규모의 전함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 거인들의 전성기일 수도 있었으나, 결국 그들의 무덤이 되었다. 1945년 4월 침몰한 야마토가 그 대표적 사례다. 항공모함에게 주도권을 순식간에 내주며, 해군 황금기의 대형 범선 전함의 계승자였던 이 바다의 괴물들은 저마다 엇갈린 운명을 맞이했다. 그라프 슈페와 비스마르크의 영웅적인 활약, 프린스 오브 웨일스와 리펄스의 비극, 장 바르와 샤른호르스트의 기적 같은 생존 이후, 가장 거대했던 야마토는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가?
전함 야마토, 떠다니는 거인
이토록 거대한 괴물이 어떻게 바다에 뜰 수 있었을까? 제원을 보면 납득이 간다. 기준 배수량 64,200톤, 전장 263미터, 전폭 39미터, 주 장갑대 두께 400mm. 주포는 3연장 포탑 3기에 460mm(45구경) 주포 9문을 탑재했으며, 1톤이 넘는 포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최대 속력은 27노트(약 50km/h)에 달했고, 승조원은 3,000명 이상을 수용했다. 야마토는 비스마르크나 미국의 최신예 아이오와급을 뛰어넘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강력한 전함이었다.

1934년, 군함 제한 조약이 파기되기 전부터 개발이 시작되어 1937년 11월 4일 구레 해군 공창에서 기공식을 가졌다. 진수 후 1941년 12월 16일 취역했는데, 진주만 공습 불과 9일 뒤였다. 본래 '초(超)함대'의 기함으로 구상되었으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단순한 기함으로 전락했다. 자매함 무사시(Musashi)는 1944년 말 레이테만에서 미군 항공대의 집중 공격(어뢰 19발, 폭탄 17발 피격)을 받고 침몰했고, 3번함 시나노(Shinano)는 급히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이는 전함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전장에서 멀어진 야마토
진주만 공습 직후 취역했음에도 야마토는 오랫동안 실전, 특히 포격전과는 거리를 두었다. 1941년 12월 7일 이후 거의 모든 주요 해전(1942년 미드웨이 해전, 1944년 레이테만 해전 등)에 출동했으나, 주포를 단 한 발도 쏘지 못한 채 지나가기 일쑤였다. 1942년 5월 이후 결정적인 해전은 함대가 마주 보지 않은 채 함재기만으로 수행되었기 때문이다. 산호해 해전, 미드웨이 해전, 동부 솔로몬 해전이 그랬다. 과달카날 해전 등 포격전이 벌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소규모에 그쳤고 주로 순양함급이 주역이었다.

일본이 야마토의 막강한 화력을 마침내 쓰려 할 때, 운명은 허락하지 않았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야마토를 포함한 전함대를 야간 결전에 투입하려 했으나, 일본 항공모함 4척을 격침시킨 미 함대가 신중히 후퇴해버렸다. 레이테만 해전에서는 자매함 무사시와 함께 구리타 제독의 부대에 배속되어 미 상륙 함대 공격을 맡았으나, 기습에 실패하고 미군 항공대의 선제 공습으로 무사시를 잃었다. 구리타 제독의 망설임 끝에 겨우 적 함대와 조우해 포격을 개시했으나, 일본 제국 해군의 마지막 거대 전력을 허무하게 잃을까 두려워 철수를 명했다.
오키나와에서 희생된 야마토 (1945년 4월)
이후 일본 거점들이 차례로 함락되는 동안, 항공모함을 거의 잃은 일본군 수뇌부는 본토가 직접 위협받기 전까지 마지막 함대를 아낄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이 오키나와 전투였다. 오키나와 방어전은 제국 해군(과 육군)의 최후 결전으로, 미군에 최대 피해를 입혀 일본 본토 상륙을 단념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야마토는 일본 계획의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동안의 패배가 제공권 장악의 필연성을 증명했기에, 오키나와 전력은 항공 전력에 집중되었다. 일본이 보유한 항공기는 약 2,000대에 불과했고, 조종사 훈련도 미완성이었다. 그중 다수는 레이테 때처럼 특공(가미카제) 요원이었다.
오키나와 전투가 개시되자 야마토의 역할이 주목받았다. 4월 4일, 야마토는 반격 기동 부대에 편입되어 미 함대를 유인, 일본 육상 항공대의 공격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미끼'이자 '특공' 임무를 맡았다. 편제상 호위함 야하기(Yahagi) 등과 함께 편도 분량의 연료만 탑재한 채, 4월 6일 출항했다. 곧 미군 정찰기에 포착되었고, 잠수함의 위협을 구축함들이 떨쳐내며 밤을 보냈다. 7일 정오경, 미 항모에서 200대 이상의 항공기가 발진했다는 정보가 들어왔고, 곧이어 구름 떼처럼 적기들이 몰려왔다. 악천후는 수비 측인 일본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했다.

야마토의 대공 화력은 1944년 초 '3식탄(산시키탄, San-shiki)' 도입으로 크게 강화되었다. 주포에서 발사되는 이 탄은 30km 거리에서 폭 400m, 길이 1,000m의 화염 장벽을 형성했다. 하지만 제공권 없는 상태에서 대규모 공습, 그것도 낮은 구름 뒤에 숨은 적기를 상대로는 역부족이었다. 구름 때문에 주포인 3식탄 사격조차 불가능했다. 오후 1시경, 야마토는 폭탄 2발과 어뢰 1발을 맞았고, 순양함 야하기는 중파되어 정지, 구축함 1척이 침몰했다.
짧은 소강 상태 후 2차 공격파가 덮쳤다. 구축함 1척이 추가로 피격되었고, 야마토에도 어뢰 2발이 적중했다. 또 다른 호위함 1척이 침몰했다.
전함 야마토의 최후
3차 공격은 150여 기, 그중 20기는 야마토만을 노린 뇌격기였다. 야마토는 3발의 어뢰를 맞았는데, 그중 1발이 키를 파괴하고 우현 구획을 침수시켜 속력과 기동성을 치명적으로 저하시켰다. 야하기도 이때 침몰했다.
오후 2시, 야마토 정중앙에 폭탄 3발이 작렬했고, 몇 분 뒤 좌현 2발, 우현 1발의 어뢰가 추가로 명중했다. 거함은 서서히 기울며 7노트로 느리게 전진할 뿐이었다. 15분 뒤, 결정적인 어뢰가 측면을 강타했다. 야마토는 급격히 선회하며 탄약고가 폭발, 함체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승조원 3,000명 이상이 수장되었고, 생존자는 고작 269명에 불과했다.
야마토와 호위 함대의 희생은 결국 헛되었다. 제국 해군은 소멸했고, 오키나와는 전쟁 최악의 격전 끝에 함락되었다. 일본 본토로 가는 길은 열렸고, 전함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2005년, 건조지인 구레 시에 야마토 박물관이 개관하여 1/10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더 읽어보기
- Jean Moulin, 『World War II Battleships』, 2009.
- Bernard Ireland, 『20th Century Battleships』,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