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무라비, 바빌로니아 제1왕조의 여섯 번째 왕
함무라비(Hammurabi)는 아카드어로 '캄무라비(Khammurabi)', 아모리어로는 '암무라피(Ammurapi)', 즉 "암무가 치유한다"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 소위 바빌로니아 제1왕조라고 불리는 바빌론의 여섯 번째 왕이었다.
그는 하부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한 업적으로 널리 기억되며, 무엇보다도 역사상 최초의 성문법 사례 중 하나로 꼽히는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을 반포한 인물로 유명하다.
법전에 담긴 놀라운 현대적 원칙
이 법전에는 당시 기준으로는 놀랄 만큼 현대적인 원칙이 담겨 있다. 바로 '법은 모든 사람에게 알려져야 하며, 모든 사람은 법을 알아야 할 의무를 진다'는 것이었다. 지배층만이 법을 독점하던 고대 사회에서 이는 혁명적인 발상이었으며, 오늘날 법치주의의 근간이 된 개념으로 평가받는다.
마르두크 숭배와 제국 통합의 상징
함무라비는 제국이 단 하나의 신의 후원 아래 통치되어야 한다고 확신했으며, 그 결과 마르두크(Marduk)를 제국 전체의 주신으로 삼았다. 그는 마르두크의 이름으로 정복된 도시들에게 공물을 요구했고, 종교적 통합을 통해 정치적 통치를 강화했다.
통치 초기의 평화와 대규모 공공사업
즉위 초년의 통치는 비교적 평화로웠다. 함무라비는 권력을 주로 일련의 공공사업에 집중했는데,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업들이 있었다.
- 방어를 위한 도시 성벽의 강화
- 일부 신전의 복원
- 광대하고 효율적인 운하망의 굴착
특히 이 운하망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니푸르(Nippur)에서 에리두(Eridu)까지의 관개를 담당한 것으로, "함무라비는 백성의 풍요"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는 단순한 수로가 아니라 농업 생산력과 백성의 삶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였음을 보여준다.
팽창 정책과 군사 원정
결연한 팽창주의 정책에 힘입어 바빌론은 티그리스(Tigris) 강 유역 전체와 유프라테스(Euphrates) 강 유역 일부를 지배하게 되었다.
군사 원정의 첫 방향은 남쪽이었다. 함무라비는 즉위 7년째에 라르사(Larsa) 왕의 지배 하에 있던 우루크(Uruk)와 이신(Isin)을 정복했다. 이후 그는 남쪽으로의 추가 군사 행동을 자제하고 북서쪽과 동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는데, 그곳에는 매우 맹렬한 왕국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팽창 정책의 진짜 목적
함무라비의 팽창주의 정책은 국경 밖의 잠재적 강대국들을 제거하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분쟁과 전쟁의 끊임없는 원인이 되어온 도시 국가들의 세력을 견제하는 것을 근본적인 목표로 삼았다.
메소포타미아 정치 통합의 완성
함무라비는 뛰어난 외술과 군사 전략을 결합하여 메소포타미아의 다양한 민족들을 정치적으로 통합하는 대업을 추진했다. 그의 영향력은 사막 지대의 부족들에게까지 미쳤으며, 국가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셈족적 요소를 한층 강화시켰다. 이러한 통합의 결과물이 바로 후세에 전해지는 함무라비 법전과 통일된 바빌로니아 제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