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대도시 카르타고는 용병 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에, 군대 운영에 있어 돈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군사 분야에서 극적인 변혁이 일어났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카르타고(포에니) 군대에는 자체적인 폴리비오스와 같은 기록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상학적 자료와 그리스·라틴 문헌 덕분에 그 조직을 비교적 잘 알 수 있습니다.

- 한니발 바르카(Hannibal Barca)
군대의 구성
구성 면에서 보면 눈에 띄는 변화는 미미한 편이었습니다. 카르타고 지배 하의 연안 지역에는 포에니 도시들의 파병 부대, 비(非)포에니계 아프리카인들,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모집된 병력들이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동맹군, 속민, 용병으로서, 혹은 징병 의무를 이행하며 복무했습니다.
역사가 리비우스는 한니발이 병사들을 향해 던진 연설을 통해 이러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여러분, 나의 오랜 보병 여러분, 가장 고귀한 가문 출신의 기수 여러분, 굴레를 쓴 말이든 굴레 없는 말이든 탄 기병 여러분, 가장 용맹하고 가장 충실한 동맹군 여러분, 카르타고의 시민들이여…"

기병: 포에니 군대의 핵심 전력
리비우스의 이 기록은 전술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카르타고 군에는 중기병과 경기병이 공존했습니다.
중기병은 전투에서 강력한 충격 효과를 내기 위해 투입되었으며, 종종 전투코끼리 부대와 협동하여 움직였습니다. 코끼리 등에는 조련사(마후트)와 투구와 흉갑을 갖추고 투창을 든 병사가 탑승했습니다. 중기병은 투구와 흉갑, 검과 창으로 무장한 카르타고인들과 갈리아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경기병은 적을 계속해서 괴롭히는 소모전을 담당했으며, 이베리아 반도와 누미디아 출신이었습니다. 이 두 출신의 전사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며, 양측 모두 '파르마(parma)'라 불리는 소형 방패와 투창을 사용했습니다. 다만 히스파니아인들은 여기에 짧은 검을 갖추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로마군과의 결정적 차이
보병이 '전투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로마군과 비교할 때, 주목할 만한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포에니 군대에서 기병 전력은 전투의 필수 요소였으며, 때로는 단독으로 승부를 결정짓기도 했습니다.
보병: 리비아의 호플리테스와 시민 병사들
물론 중장보병과 경장보병도 존재했습니다. 중장보병은 특히 리비아 출신 부대로 구성되었는데, 제2차 포에니 전쟁 초기에는 창과 검, 깃털 장식 투구, 중형 방패, 각반, 비늘 흉갑을 갖춘 그리스 호플리테스와 형제나 다름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이들은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근본적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시인 실리우스 이탈리쿠스는 안타깝게도 시인일 뿐 신빙성 있는 기록가는 아니지만, 이국적이고 울림 좋은 이름들로 가득한 생생한 묘사를 통해 군대의 구성을 일깨워 줍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민 병사들, 즉 '시리아 카르타고의 청년들'입니다. 보병에서는 그 수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중기병과 해군 함선 승무원의 주축을 이루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