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옆 언덕 마을에 서 있는 로마의 영광
프랑스 지중해 연안, 이탈리아 국경과 거의 맞닿은 언덕 마을 라 튀르비(La Turbie). 이곳은 1982년 모나코 공녀 그레이스 켈리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장소로 슬픈 유명세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마을이 처음 세계에 이름을 알린 것은 훨씬 오래전, 고대 로마 시대였습니다.
마을 이름은 라틴어 tropea, 즉 '전리품·승리 기념물'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기원전 6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곳에 기념물 건립을 결정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알프스 일대 리구리아 부족들을 상대로 거둔 결정적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였으며, 이 독특한 기념물은 오늘날 '알프스 트로피'(라틴어 Tropaeum Alpium)로 불립니다.

로마는 왜 이 부족들과 싸워야 했나
기원전 25년부터 로마는 이 지역에서 '나쁜 버릇'을 가진 부족들과 끊임없이 충돌해 왔습니다. 이들은 갈리아 남동부 도로를 오가던 로마 상인들을 습격해 상품 운송을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아우구스투스는 트로피(전리품 기념물)를 세웠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기념물에는 방어나 군사적 기능이 전혀 없었으며, 이탈리아 속주와 갈리아 나르보넨시스 사이의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만 수행했습니다.
49m에 달했던 웅장한 구조
기념물은 현장에서 불과 800m 떨어진 채석장에서 채취한 돌로 지어졌으며, 바위에 새겨진 기둥을 떼어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완공 당시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 각 변의 길이가 35m인 정사각형 연단(플랫폼), 높이 12m의 2층 구조
- 그 위에 2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원형 열주
- 열주 꼭대기에는 아우구스투스 동상이 세워진 계단식 원뿔형 지붕
- 전체 높이 약 49m
열주의 벽감에는 아우구스투스 장군의 동상이 안치되어 있었고, 연단 2층에서 열주까지는 계단을 통해 오를 수 있었습니다.

패배한 부족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문
대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의 기록에 따르면, 기념비 봉헌식에는 패배한 모든 부족의 이름이 새겨졌다고 합니다. 이 부족들은 새롭게 건설된 도시 세메넬룸(Cemenelum, 오늘날 니스 인근 시미에즈)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요새가 되었다가, 파괴와 복원의 역사
12~15세기 동안 트로피는 요새로 개조되었고, 지역 주민들은 기념비 기슭의 벽면을 집 벽 삼아 주택을 지었습니다.
1705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프랑스와 사보이 간의 전쟁이 진행되던 중 루이 14세는 트로피를 포함해 이 지역의 모든 요새를 철거하라고 명령합니다. 해체된 성벽의 석재는 마을 주택과 생미셸 교회를 짓는 데 사용되었고, 기념물은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1929년, 미국의 자선사업가 에드워드 턱(Edward Tuck)이 부분 복원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박물관을 설립했습니다. 박물관에서는 축소 모형, 주형, 복원 작업을 기록한 오래된 사진 등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복원 작업은 쥘 포르미제(Jules Formigé)가 감독했으며, 1934년 4월 26일에 완성되어 공개되었습니다.
지금도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곳
마을과 기념물은 로마 도로 비아 율리아 아우구스타(Via Julia Augusta)의 가장 높은 지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서면 모나코 공국과 프랑스 리비에라 전역, 나아가 이탈리아 해안까지 거의 모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