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및 제원
처칠 마크 I ~ 마크 VIII 주요 제원
형식: 보병전차 (Infantry Tank)
승무원: 5명
무장:
- 처칠 I: 2파운드포 1문, 7.92mm 베사(BESA) 기관총 1정, 케이스메이트 하부 3인치 곡사포 1문
- 처칠 II: 2파운드포 1문, 7.92mm 베사 기관총 2정
- 처칠 III: 6파운드포(57mm) 1문, 7.92mm 베사 기관총 2정
- 처칠 IV NA 75: 75mm 포 1문, 7.62mm 브라우닝 기관총 1정, 7.92mm 베사 기관총 1정
- 처칠 V, VIII: 95mm 곡사포 1문, 7.92mm 베사 기관총 2정
- 처칠 VI, VII: 75mm 포 1문, 7.92mm 베사 기관총 2정
- 처칠 I CS: 3인치 곡사포 2문, 7.92mm 베사 기관총 1정
장갑 두께:
- 처칠 I~VI: 최소 16mm ~ 최대 102mm
- 처칠 VII, VIII: 최소 25mm ~ 최대 152mm
크기 및 중량
전장: 7.44m
전폭: 3.25m
전고: 2.49m
전투 중량: 39.5톤 (처칠 III 기준)
엔진: 베드포드(Bedford) 12기통 직렬 수랭식, 350마력
성능
도로 최고속도: 24.8 km/h
야지 최고속도: 12.8 km/h
항속거리: 144km
수직 장애물 극복: 0.812m
참호 횡단: 3.048m
운용 기간: 영국군 1941~1952년, 아일랜드·인도·요르단에서도 운용
개발 배경
처칠 전차의 개발 계획은 제1차 세계대전의 전차 설계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채 시작되었다. 초기 공식 요구사항은 '중장갑·중무장이지만 느리고 둔중한 전차'였다. 그러나 시제품이 정의되자마자 중량과 체적 감축 방향으로 요구사항이 수정되었다. 독일의 침공 위협이 임박하자 영국은 생산을 서둘렀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는 기술적 난제에 직면했으나 지속적인 개량을 통해 극복해 나갔다.
1942년 말에는 처칠의 생산 중단이 검토되기도 했으나,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생산이 지속되었다. 이 전차의 섀시는 화염방사전차, 교량전차, 도킹전차, 지뢰제거전차, 구축전차 등 다양한 특수 용도로 개조될 만큼 확장성이 뛰어났다.
상세 개발사
A.20에서 A.22로
1939년 9월, 영국 육군성은 지크프리트 선 방어를 돌파할 중보병전차 계획안(A.20)을 발표했다. 요구사항은 정면 장갑 60mm, 속도 15km/h, 무장은 40mm 대전차포 또는 95mm 저초속포였다.
무장 배치 방안으로 케이스메이트, 포탑, 곤돌라 등 여러 안이 검토되었고, 최종적으로 마틸다(Matilda) 전차의 포탑을 채용하고 정면 케이스메이트에 40mm포를 추가하며, 양측 곤돌라에 베사 기관총을 탑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신형 전차 4대의 시제품은 '보병전차 마크 IV (A.20)' 제식명으로 벨파스트의 할랜드 앤 울프(Harland and Wolff Ltd.)사에 발주되어 1940년 중순 첫 번째 시제품이 납품되었다.
무장을 장착하지 않은 시제품은 엔진과 변속기에서 신뢰성 문제를 드러냈고, 복스홀 모터스(Vauxhall Motors Ltd.)에 신형 엔진 개발이 요청되었다. 이 과정에서 계획안은 A.20에서 A.22로 변경되었고, 복스홀이 단순 엔진 납품사를 넘어 전차 전체의 주계약자(prime contractor)로 지정되었다.
신형 시제품은 1940년 말 완성되었고, 양산 1호기 14대가 1941년 6월 복스홀에서 납품되었다. 계획 착수 불과 1년 만이었다. 양산이 본격화되자 복스홀을 주축으로 11개 영국 업체가 컨소시엄을 이뤄 생산에 참여했다. 전쟁 종료 시점까지 마크 IV 보병전차 총 5,640대가 주문되었다. 1941년 6월, 윈스턴 처칠 수상의 이름을 따 '처칠'로 명명되었는데, 그의 강건하고 당당한 체구와도 묘하게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기술적 특징
현가장치와 궤도
처칠의 가장 큰 특징은 차체를 감싸는 형태의 장착 궤도(enveloping tracks)와 양측 11개의 소형 전륜(small rollers)에 각각 독립 코일 스프링 현가가 적용된 점이다. 이 방식은 전륜 일부가 적탄에 손상되어도 기동성과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다.
엔진 배치와 포탑
엔진과 부속품을 차체 후미로 최대한 밀어내어 전투실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차체 위에는 비교적 작은 포탑이 얹혔으며, 양호한 광학 장비와 상부 해치가 갖춰졌다. 양측 해치를 통해 승무원이 전투실 중앙부로 직접 출입할 수 있었고, 측면에는 엔진 흡기구가 위치했다.
메리트-브라운 조향장치
10년 전 A.6 전차에서 검증된 메리트-브라운(Merritt-Brown) 조향장치가 채용되었다. 이 시스템은 선회 시 에너지 손실을 크게 줄이면서, 기어 단수에 따라 선회 반경을 가변할 수 있게 했다. 저단 기어일수록 선회 반경이 작아지며, 중립 상태에서는 제자리 회전(pivot turn)이 가능했다.
유압 조종장치와 독립 현가
변속기 옆에 유압 조종장치가 있어 조종수의 피로를 크게 덜어주었다. 또한 각 궤도 전륜마다 독립 현가가 적용되어 전지형 주행 성능과 안정성을 보장했다. 승차감이 탁월하지는 않았으나, 전륜 일부가 파손되어도 기동이 가능했다.
무장 체계
최종 채택된 무장은 포탑 하부 대전차포(40mm → 57mm → 76mm)와 케이스메이트 하부 76mm포였다. 포탑에는 주포와 연동된 7.92mm 베사 기관총이 장착되었고, 대공용으로 레이크먼(Lakeman) 마운트에 7.7mm 브렌(Bren) 기관총을 탑재할 수 있었다. 마크 II CS형은 근접지원용 95mm포를 포탑에, 40mm 대전차포를 케이스메이트에 탑재했다.
궤도와 수륙양용 기능
초기형은 70개의 주철 궤도슈(truck pad)를 사용했고 흙받이(mudguard)가 없었다. 마크 III부터 모든 형에 흙받이가 장착되었고, 기존 궤도는 72개의 신형 주철 슈(나중에는 망간강)로 교체되었다. 초기형에는 수상 주행을 위한 돌출 공기흡입구와 배기관이 장착되기도 했다.
주요 파생형 변천
마크 IA / 처칠 II: 케이스메이트 76mm포를 베사 기관총으로 대체.
처칠 III: 57mm(6파운드) 대전차포를 용접 포탑에 탑재, 차체 기관총 1정.
처칠 IV: 주조 포탑 채용.
처칠 V: 57mm포를 95mm 근접지원 박격포로 교체.
처칠 VI: 주조 포탑에 75mm 포구제동기포 장착으로 화력 향상.
처칠 VII (1944년~): 차체와 포탑이 전면 개량된 결정판. 종전 후에도 장기 운용.
처칠 IV NA (북아프리카형): 셔먼 전차의 포탑 무장을 이식한 개조형으로, 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운용되었다.
특수 목적 변형: AVRE와 크로커다일
AVRE (Armoured Vehicle Royal Engineers)
공병 부대 지원을 위해 마크 III, IV를 REME(왕립전기기계공병단)와 M.G. 시설에서 개조한 장갑공병차량. 포탑에 290mm 구경의 페타드(Petard) 박격포를 장착해 18kg(폭약 12kg) 탄두를 72m 거리까지 분당 2~3발 발사할 수 있었다. 이 포는 57mm포 마스크에 부착되었다. 내부 배치가 변경되었으며, 베사 기관총은 유지하되 조종수 측 해치는 장전용 슬라이딩 해치가 있는 용접판으로 교체되었다. 완전 전투 중량 36톤, 승무원 6명(전차장, 조종수, 공병, 무전수, 포수, 장전수 겸 부조종수).
처칠 크로커다일 (Churchill Crocodile)
영국군이 전쟁 중 정규 운용한 유일한 화염방사전차. 이탈리아 L3/35 화염방사전차와 유사한 개념으로, 처칠 VII 차체 기관총 자리에 화염방사기를 장착하고, 장갑 궤도관을 통해 차체 하부로 연결된 2륜 장갑 트레일러에 인화액과 가압 질소통을 실었다. 트레일러는 관절식 히치로 연결되어 험지 추종성이 양호했다. 인화액 밀도를 높여 풍향 영향을 최소화했으며, 1,810리터를 최대 110m까지 연사 또는 일괄 발사 가능했다. 트레일러 피탄 시나 내용물 소진 시 차내에서 분리할 수 있는 장치도 갖췄다.
이 외에도 교량전차, 도킹전차, 지뢰제거전차 등 수많은 특수형이 AVRE 베이스로 파생되어 현장 개조가 용이했다.
실전 운용 기록
1941년 부대 배속된 처칠 I, II, III는 1942년 8월 18일 디에프 강습(Dieppe Raid)에서 실전 데뷔했다. 제14캐나다기갑연대 소속 28대가 투입되었으나 전량 손실되었고, 일부는 양호한 상태로 독일군 수중에 넘어갔다. 이 중 마크 III(57mm포 탑재형)는 1942년 10월 엘 알라메인 전투부터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어 튀니지 전투까지 활약했다. 90~180mm에 달하는 장갑과 다용도 무장, 탁월한 베드포드 12기통 대향엔진 덕분에 초기 영국 전차들에 비해 비약적 진보를 이뤘다.
이후 1943~1945년 유럽 전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이탈리아 전선에서는 크레모나(Cremona) 그룹 등 이탈리아 해방군 부대를 화력 지원했다. 현재도 유럽과 미국에 다수의 실물이 보존·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