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산업사회란? 노동자 투쟁과 사회주의·아나키즘·마르크스주의의 등장

산업사회의 형성 배경

산업사회는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려는 개혁을 추구하던 노동자들의 투쟁이 낳은 결과물입니다. 산업사회는 점차 변화를 거듭하며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 개선을 모색해 왔습니다.

19세기 전반기, 산업화 과정의 진전으로 유럽 주요 도시의 노동 인구는 크게 증가했고, 이는 부와 빈곤 사이의 격차를 더욱 벌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프랑스의 산업화가 영국만큼 격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인구 증가율이 가장 높은 도시였습니다. 과로와 비참한 생활에 지친 노동자들은 주요 공업 중심지의 주변 지역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산업화의 선구자였던 런던에서는 열악한 주거 환경에 사람들이 밀집하면서 콜레라와 장티푸스가 도시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이는 부르주아 계층조차 우려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억압받던 대중의 반란에 대한 두려움은 최상위 부유층마저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노동조합의 조직화

19세기 초,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조합을 결성하기 시작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노동운동의 힘과 일부 사회 세력의 동참 덕분에 여러 노동권이 이미 쟁취되어 있었습니다.

노동조합 운동은 노동계급의 요구를 위해 싸우는 집단부터, 이 운동을 사회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치 활동으로 활용하려는 집단까지 다양한 성향을 아울렀습니다. 많은 이들이 노동자의 투쟁이 더 넓은 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 자리한다고 믿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혁명적 생디칼리슴(노동조합주의)이 사회 변혁을 요구하는 수단으로 총파업을 내세웠습니다.

사회주의

근로자의 생활 및 노동 조건 개선을 추구한 초기 시도 중 하나는 스코틀랜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산업가 로버트 오언(Robert Owen, 1771~1868)은 뉴라나크(New Lanark)에 있던 자신의 공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주거, 교육, 식량을 제공하고 하루 노동 시간을 10시간 30분으로 제한하는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오언은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더 나은 조건을 제공하기 위해 사회를 마을 단위로 재조직하는 구상을 세웠고, 미국 인디애나주의 자신의 농장에서도 같은 이념을 적용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사회적 불의를 스스로 해소하도록 자발적으로 조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생시몽(Saint-Simon, 1760~1825)과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가 모든 인류를 위한 조화로운 사회를 구상했으며, 그 안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에 종사하게 됩니다. 이들은 후에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로 불렸지만, 그들의 계획은 사회 격차를 해소하는 데 실효성이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정치적 권력에서 소외된 채 남았고, 부르주아는 모든 것을 통제하며 결코 자신의 부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아나키즘(무정부주의)

자본주의 체제는 사유재산과 모든 형태의 정부의 종식을 주장한 아나키스트들의 비판 대상이 되었습니다.

아나키즘 사상은 자유와 권위의 부재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노동은 협동조합 체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자치 관리를 하는 작은 공동체들과 그들 간의 교환 체제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바쿠닌(Bakunin, 1824~1876)과 프루동(Proudhon, 1809~1865)을 비롯한 아나키즘 이론가들은 자본주의 착취에 맞서는 전략에서 서로 입장을 달리했습니다.

아나키즘 사상은 노동조합에까지 확산되었으며, 19세기 말에는 프랑스, 이탈리아, 특히 스페인에서 아나코생디칼리스트들이 전국노동자연맹(CNT)을 창설했습니다.

결국 아나키즘 경향은 국제 노동계급 투쟁 무대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사회민주주의 흐름에 밀려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산업화된 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여러 구상이 유럽에서 등장했으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마르크스주의였습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혁명가인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와 함께 '과학적 사회주의'라 불리는 마르크스주의를 창시했으며, 이는 자본주의 질서와의 단절을 통해 사회 불평등을 종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1848년 프랑스에서 발표된 「공산당 선언」은 노동자들에게 혁명을 호소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역사는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해야 하는 법칙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각 사회가 부의 생산과 분배를 조직하는 방식이 사회 질서, 정치 구조, 문화적 가치를 규정하며, 경제 요인이 최종 결정 요인이 됩니다. 따라서 평등한 사회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급진적 혁명을 통해 생산 방식 자체를 변혁해야 했습니다.

기독교 개혁가들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불의는 가톨릭 교회에도 우려를 안겨주었고, 교회는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했습니다.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기독교적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한 초기 인물 중 한 명은 프랑스 출신 사제 로베르 라멘네(Robert Lamennais)입니다. 그는 현대 사회에 기독교 가르침을 접목하면 사회 정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교황 레오 13세는 1891년 회칙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을 통해 교회의 개혁 운동에 큰 탄력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는 이 회칙에서 사회주의적 제안을 거부하고 사유재산을 옹호하는 한편,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기독교의 원칙을 따를 것을 요구했습니다. 교황 레오 13세에게 노동자는 직장에서의 보호, 노동 시간의 제한, 노동조합 조직의 권리를 지닌 존재였지만, 파업권과 혁명적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구조적 변혁에 대한 권리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사회 운동은 20세기까지 이어지며 사회주의 운동의 온건파 세력과 연대를 형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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