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유해를 영원히 안치하기 위해 거대한 석재로 축조한 왕릉입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라미드는 123기에 달하며, 그중에서도 기자 고원에 자리한 쿠푸(기옵스), 카프레(케프렌), 멘카우레의 세 대피라미드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건축군은 사자의 몸에 파라오의 머리를 지닌 신화적 존재인 스핑크스가 지키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역사

피라미드는 이집트에 강력하고 풍요로운 문명이 꽃피우던 시절에 세워졌습니다. 건축은 고왕국 시대(기원전 2686~2181년경)에 시작되어 서기 4세기까지 이어졌으며, 특히 제3왕조부터 제6왕조에 걸친 기원전 2325년 전후가 축조의 절정기였습니다.
이 시기 이집트는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했습니다. 파라오는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로 선택된 일종의 신격으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은 왕이 육체적으로 죽은 뒤에도 그 영혼인 '카(Ka)'가 시신 속에 머무르며 특별한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에서 미라 제작이 탄생했습니다.
미라 제작 과정에서 파라오의 시신은 정성껏 오일로 처리되고 붕대로 감겨 시간의 풍화를 견디도록 했습니다. 장이나 간 같은 일부 장기는 적출되어 특수 항아리에 담긴 뒤 석관 곁에 안치되었습니다.
또한 파라오는 사후 세계에서 필요할 모든 것, 즉 보물과 식량, 가구까지 함께 붙였습니다. 왕족, 사제, 관리들도 파라오 곁에 묻혔습니다.
최초의 피라미드
제1왕조 초기인 기원전 2950년경까지 무덤은 암석을 깎아 만들거나 '마스타바'라 불리는 구조물로 세워졌습니다. 마스타바는 피라미드형을 띠었지만 마치 쌓아 올린 상자처럼 생겼고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마스타바를 모델로 삼은 최초의 피라미드는 제3왕조의 조세르 왕이 기원전 2630년경에 건립했습니다.
이집트인들이 피라미드 형태를 택한 이유는 파라오가 하늘로 승천하여 이집트 신화의 가장 강력한 신인 태양신 라(Ra)를 만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여섯 개의 돌계단이 모두 62미터 높이에 이르며, 당시 최고의 무덤이었습니다. 주위에는 조세르가 내세에서 누릴 신전과 성역들이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조세르의 피라미드는 이후 왕실 장례의 기준점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무덤을 같은 규모로 짓도록 지시할 만큼 오래 산 군주 중 한 명이 바로 기원전 2631~2589년에 살았던 스네프루였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특징
피라미드는 그 안에 잠든 파라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됩니다. 각 피라미드는 백성과 신들 앞에서 드러낸 해당 파라오의 위대함을 상징합니다.
이 건축물들은 파라오와 고위 관리들이 사용한 장례 복합단지의 일부입니다. 가장 유명한 세 피라미드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쿠푸의 피라미드

쿠푸의 피라미드는 밑변이 230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무덤으로, 완공 당시 높이는 약 146미터였으나 현재는 풍화로 인해 약간 낮아진 상태입니다.
쿠푸의 무덤과 나란히 세 개의 소형 피라미드가 지어져 왕비들의 유해를 안치했습니다. 쿠푸의 어머니인 헤테페레스 왕비의 석관이 있는 무덤과, 왕의 관리들을 위한 더 작은 피라미드와 마스타바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쿠푸의 피라미드는 각각 2.5~60톤에 이르는 석재 약 230만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공사에는 약 20년이 걸렸으며, 10만 명에 달하는 노동력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카프레의 피라미드

기자 고원에서 두 번째로 큰 피라미드는 파라오 카프레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높이는 143미터입니다. 카프레는 쿠푸의 아들로, 아버지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자신의 피라미드를 10미터 낮게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곁에는 고대 세계 최대의 석상인 기자의 스핑크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멘카우레의 피라미드

세 피라미드 중 가장 작은 것은 기원전 2532~2503년에 재위한 멘카우레를 위해 지어졌습니다. 그는 카프레의 아들이자 쿠푸의 손자입니다. 높이는 65미터, 밑변은 105미터에 이릅니다.
내부에는 도굴꾼을 막기 위해 방, 가파른 통로, 가짜 통로로 이어지는 정교한 구조가 반복됩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장치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피라미드의 보물들은 대부분 도굴당하고 말았습니다.
피라미드 건축 시대의 끝
이집트 왕들의 권력과 부가 쇠퇴하면서 피라미드 건축의 속도도 느려졌습니다. 제5왕조와 제6왕조를 거치며 건축물은 점점 작아졌습니다.
기원전 2375~2345년에 살았던 우나스 왕의 무덤에서는 그의 통치와 관련된 벽화와 문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고대 이집트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최초의 기록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 위대한 건축가는 제6왕조의 두 번째 통치자 페피 2세로, 기원전 2278~2184년에 살았습니다. 그가 죽은 후 이집트는 혼란에 빠졌고, 제12왕조에 이르러서야 피라미드 건축이 재개되었지만 예전의 웅장함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어떻게 지어졌을까?
피라미드의 건축은 공학 분야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집트인들은 종교적 신념에 바탕을 둔 수학적 계산을 행했고, 이것이 건축물의 높이와 폭을 결정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노동력은 노예와 자유민 모두로 이루어졌습니다. 외지 출신 노예부터 나일강 범람기에 일자리를 구한 이집트 농민까지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습니다.
또한 사후 세계에서 파라오를 모실 물품들을 제작한 수많은 장인과 화가가 고용되었습니다.
피라미드를 이룬 석회암의 운반 방식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존재하며, 외계인의 도움으로 지어졌다는 주장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말 네덜란드 과학자들이 마지막으로 받아들여진 가설을 제시했는데, 바로 물을 이용해 석재를 운반했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최소 150명의 노동자가 끄는 썰매 위에 얹힌 돌 앞에서 물을 뿌리는 사람의 그림을 관찰한 데서 나왔습니다. 물을 뿌리면 모래의 마찰력이 줄어 무거운 석재를 쉽게 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인들은 또한 나일강의 범람기를 활용해 강을 따라 돌을 운반하기도 했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 평범한 백성들도 파라오의 영광에 동참하고자 했습니다. 실제로 2010년 연구진은 피라미드 인근에서 400구에 달하는 유해가 안치된 도랑을 발견했습니다.
- '파라오식 공사'라는 표현은 고대 이집트의 건축에서 유래했으며, 건축물의 압도적인 웅장함을 비유할 때 사용됩니다.
- 쿠푸의 피라미드는 14세기 잉글랜드에 링컨 대성당이 세워질 때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