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A는 '에우스카디 타 아스카타수나(Euskadi Ta Askatasuna, 에우스카디 곧 조국과 자유)'의 바스크어 약자로,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을 기반으로 활동한 분리주의 조직입니다.
ETA는 1959년 하나의 문화 단체로 설립되었지만, 1970년대 말부터는 바스크 지방의 독립 선언을 최대 목표로 삼게 됩니다. 이를 위해 살해·납치·갈취·협박 등 폭력적인 수단을 적극적으로 동원했습니다.
2011년에는 무장 행위 종료를 선언했고, 2018년 마침내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ETA의 탄생 배경과 목표
스페인 내전(1936~1939) 이후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독재 체제가 확립되면서, 지역 고유의 문화 표현은 사실상 전면 금지되었습니다.
프랑코 정부는 바스크어 사용과 지역 깃발 게양, 지역 지도자 추대까지 강력하게 통제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일부 대학생들은 1959년 바스크어와 바스크 문화를 보존·발전시키기 위한 문화 단체를 결성했습니다.
그러나 이 조직은 점차 마르크스-레닌주의 노선을 채택했고, 게릴라전을 통해 억압자에게 저항해야 한다는 이론들을 수용하게 됩니다.
당시는 쿠바 혁명과 알제리 전쟁 등 좌파 세력이 무장 투쟁으로 자국의 운명을 바꾸던 시기였습니다.
ETA는 또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탈식민지화 운동에도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들에게 바스크 지방은 '외세인 스페인이 점령한 지역'이었으며, 독립만 이룬다면 어떤 형태의 해방도 정당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주요 테러 활동

이러한 논리에 따라 ETA는 목표 달성을 위해 수많은 폭력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우익 정당 정치인과 군·경찰 지휘관들이 주요 표적이 되었으며, 그중 일부는 프랑코 체제의 고문을 담당했던 인물들이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ETA는 '프랑코 체제에 맞서 싸우는 세력'이라는 인식 덕분에 스페인 일부 국민의 호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정치적 충격을 안긴 사건은 1973년 12월 20일 마드리드에서 벌어진 당시 정부수반 카레로 블랑코(Carrero Blanco)에 대한 폭격이었습니다. 이후에도 경찰과 시민위병 요원들을 겨냥한 공격이 이어졌습니다.
활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ETA는 바스크 지방 여러 도시에서 상인과 기업인들에게 '혁명세' 납부를 요구했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사형 위협에 놓였고, 실제로 다수가 살해당했습니다.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프랑코 시절 상실한 권리가 바스크 지방으로 되돌아오자, 많은 이들은 ETA가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조직은 오히려 더욱 과격해졌고, 좌파 정치인과 일반 시민까지도 공격 대상에 포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공격은 1987년 6월 19일 바르셀로나에서 발생했습니다. 하이페코르(Hipercor) 슈퍼마켓 주차장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해 21명이 사망하고 45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테러 통계
ETA의 테러로 인해 총 854명이 사망하고 6,389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납치 사건은 86건(이 가운데 10명 사망)이며, 공격 건수는 700건(이 중 224건 미해결)에 달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ETA가 저지른 공격의 80%가 민주화 이후에 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2011년 조직이 활동 종료를 선언할 때까지 약 3,300명이 국가 보호를 받았으며, 2018년 기준 225명의 에타리스(ETA 조직원)가 스페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ETA의 종말

2011년 10월 20일, ETA는 활동 전면 중단과 함께 보유 무기를 인도할 의사를 공식 발표했습니다.
당시 조직은 심각한 내분을 겪고 있었고, 바스크 주민은 물론 스페인 전체 국민의 지지도 잃은 상태였습니다. 1960~70년대처럼 '억압 국가에 맞서는 투쟁'이라는 명분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2018년 5월, ETA는 국내외 언론과 외국 관측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기를 인도하고 조직의 소멸을 선언했습니다. 다만 이 행사에는 스페인 정부 당국자는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ETA와 IRA의 비교
ETA와 IRA(아일랜드 공화국군)는 1960~70년대 유럽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테러 조직이었습니다.
두 조직 모두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폭력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군 관련 인물과 시설을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 살상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두 조직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IRA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이라는 종교적 성격을 띤 반면, ETA는 창설 초기부터 종교 요소를 배척했습니다.
또한 IRA는 군대와 유사한 구조로 조직 계층이 중앙집권화되어 있었던 반면, ETA는 지역별 지령부로 나뉘어 상대적으로 독립적으로 움직였습니다.
IRA는 2005년 활동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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