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치의 점령과 저항의 시작
스벤 솜(Sven Somme)은 평범한 노르웨이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1940년 4월, 독일이 노르웨이를 침공하면서 그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나이가 많아 직접 전장에 나설 수 없었던 그는 동생 야코브(Jakob)와 함께 레지스탕스에 합류하며 저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동생의 죽음, 그리고 더 강해진 복수심
야코브는 독일군에게 체포된 뒤 잔혹한 고문 끝에 1943년 처형당했다. 하지만 스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동생을 살해한 자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의지는 그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임무 수행 중 발각, 그리고 사형 선고
1944년, 스벤 솜은 연합군 항공기가 폭격할 수 있도록 노르웨이 내 독일 잠수함(U보트) 정밀 시설을 촬영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독일군 시설 대부분을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그러나 오테뢰야(Oterøya) 기지를 촬영하던 중 카메라 렌즈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들키고 만 것이다. 결국 독일군에게 체포된 그는 잔혹한 고문을 견디며 끝내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고, 그대로 사형을 선고받게 된다.
기발한 탈출, 그리고 900명의 추격
그러나 솜은 기발한 방법으로 탈출에 성공했고, 여섯 명의 독일군을 따돌리는 데까지 성공했다. 문제는 탈출 사실이 금세 발각되면서 무려 900명의 독일 병력이 그의 재체포에 투입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인근 숲으로 몸을 숨겼다.
눈밭 위 300km, 흔적 없는 도주
눈 위에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는 걷는 대신 가능한 한 소나무에서 소나무로 뛰어넘으며 이동했다. 이렇게 험난한 도주로 이룬 거리는 무려 300km에 달했다. 또한 고향의 지형을 적극 활용해 시냇물과 강속을 걸어 다니며 추적꾼들의 눈을 교묘히 피했다.
동포들의 도움, 그리고 마지막 선택
마침내 그는 한 농가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이미 심각한 동상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동포들의 간호는 그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언제든 체포될 위험은 상존했고, 무엇보다 자신을 도운 그 집안 사람들마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졌다.
결국 그는 농가에 숨어 지낸 지 5주 만에, 동상으로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에서 다시금 탈출을 결심한다. 자신을 구해준 이들을 지키기 위해 택한 용감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