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환상의 전쟁': 소국 포르투갈, 프랑스와 스페인 두 강대국을 동시에 격파하다

 환상의 전쟁 : 소국 포르투갈, 프랑스와 스페인 두 강대국을 동시에 격파하다

7년전쟁(1756~1763)이 시작될 무렵 포르투갈은 중립 노선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 해군이 포르투갈 영해에서 감행한 군사 행동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분노를 샀고, 마침내 1762년 스페인군이 포르투갈 국경을 넘으면서 조용한 이베리아 반도가 전장으로 변모했다.

"완전히 무방비한 나라"로 여겨진 포르투갈

마드리드와 파리는 포르투갈 육군이 전쟁을 수행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어쩌면 그 평가가 크게 틀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약 영국이 이 작은 왕국에 한 사람의 인물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가 바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국의 장군이자, 독일 소국 샤움부르크리페뷔케부르크의 백작이자 총독으로 있던 빌헬름(Wilhelm)이었다. 그는 7년전쟁 초반 서부 독일 전선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특히 1759년 민덴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방어전술의 일가(一家)로 명성이 높았던 그는 스페인의 첫 침공 직전 포르투갈에 초청되었다.

바닥부터 다시 세운 육군

당시 포르투갈 보병은 20개 연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1762년 4월 20일 3개 연대가 추가로 창설되었고, 이어서 포르투, 샤베스, 브라간자 지역 부대들을 통합해 또 3개 연대가 더 만들어졌다.

결국 총 26개 연대, 이론상 약 4만 명의 병력이 확보된 셈이다. 같은 해 6월에는 스위스 용병 2개 대대 규모의 연대가 추가로 창설되면서 보병 전체 이론 병력은 41,620명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현실은 장부의 숫자와 달랐다. 각 연대는 정원을 채우기 위해 훈련받지 못한 남성들을 대거 모집해야 했고, 이것이 전투력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폰 리페(von Lippe)는 1762년 8월까지 겨우 18개 보병대대와 4개 기병연대, 총 5,582명만을 실전 배치 가능한 상태로 만들 수 있었다.

영국식 편제 도입

이러한 상황 속에서 폰 리페는 영국의 조직 모델을 도입해 단일 대대제 연대를 만들었다. 개편 전 각 연대는 2개 대대로 이루어졌고, 각 대대는 14개 중대, 각 중대는 55명으로 편성되어 연대당 이론 정원은 1,540명에 달했다. 연대에는 소규모 참모부도 있었으며, 스위스 연대는 1,600명 규모였다.

실제로 1762년 8월 폰 리페가 규합한 18개 대대는 하나하나가 겨우 250명씩에 불과했다. 머스킷 중대는 대위가 지휘했고, 중위 1명, 소위(엔사인) 1명, 하사 2명, 상등병 4명, 드럼수 2명, 그리고 사병 44명으로 구성되었다. 대대의 척탄병 중대 역시 구성은 동일했으나 여기에 플루트 연주자 1명이 더 배치되었다.

제복과 장비

병사들은 파란색 제복에 검은 삼각모를 쓰고, 머스킷총과 총검, 짧은 외날 검을 장비했다. 발에는 검은 장화와 검은 신발을 신었다. 탄약통은 왼쪽 어깨에서 흰 가죽 끈으로 매달았고, 검과 총검은 허리에 찬 흰 가죽 벨트에 걸었다. 각 연대마다 셔츠 소매와 깃에 고유한 색의 표식을 사용해 부대를 구분했다.

포르투갈 보병은 원래 프랑코스페인식 전투 교리로 훈련받아 왔다. 폰 리페의 개혁으로 이는 프로이센영국식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이것이 이후 전황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다.

첫 번째 침공: 게릴라전의 승리

스페인은 처음에는 단독으로, 이후에는 프랑스와 함께 1762년 4월부터 12월 사이 세 차례에 걸쳐 포르투갈을 침공했다.

첫 번째 침공에서 사리아 후작(Marqués de Sarria) 휘하의 스페인군 22,000명이 포르투갈 북동부로 진격했다. 초기에 스페인군은 순조롭게 전진하며 미란다(Miranda) 요새를 포위해 함락했고, 저항이 거의 없던 여러 도시를 지나 포르투 방향으로 진군했다.

그러나 스페인군은 곧 주민들과 급파된 소규모 부대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정면 대결로는 적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포르투갈 측은 스페인군의 보급로와 통신선을 끊어버리고 유격전으로 그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최소 8,000명의 스페인 병사가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무질서하게 도주했다.

두 번째 침공: 타후스 강 방어선

그 사이 7,000명 규모의 영국 원정군이 포르투갈에 도착했다. 폰 리페는 이 병력과 엄선된 포르투갈 병사 8,000명을 합쳐, 아란다 백작(Comte d'Aranda) 휘하 스페인군 30,000명과 보보 공(Prince de Beauvau) 휘하 프랑스군 12,000명이 연합해 감행한 중부 포르투갈 침공을 마주하게 되었다.

부르봉 연합군은 다시 화려한 출발을 보였지만, 곧 폰 리페가 구축한 타후스 강 방어선 앞에서 발목을 잡혔다. 적이 공격할 때마다 폰 리페는 초토화 전술과 함께 더 유리한 진지로 물러났고, 유격대를 보내 적의 보급선을 절단했다. 동시에 "2만 명의 영국군이 상륙해 부르봉군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환상'이 된 반격

스페인·프랑스군은 새로운 위협이라 여겨진 것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폰 리페는 바로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방어 진지에서 병력을 이끌고 나와 적을 역습해 궤멸시킨 것이다. 부르봉 연합군의 피해는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포로만 해도 12,000명을 넘었다.

세 번째, 규모가 더 작은 침공 역시 같은 운명을 맞았다. 폰 리페는 1777년 사망할 때까지 포르투갈에 머물며 포르투갈 육군을 근본부터 재건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흥미롭게도 전쟁이 끝난 뒤 영토 변경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거대한 군대가 오가며 수만 명이 희생됐음에도 국경선은 그대로였기에, 역사가들은 이 전쟁을 '환상의 전쟁(Guerra Fantástica)'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 환상 같은 이름 뒤에는 소국 포르투갈이 두 강대국의 침공을 막아낸 놀라운 방어전의 기록이 숨겨져 있다.


 환상의 전쟁 : 소국 포르투갈, 프랑스와 스페인 두 강대국을 동시에 격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