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군의 패색은 이미 짙어 있었다. 그러나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한 명의 전차장이 남긴 전과는 오늘날까지도 전설로 회자된다. 제4기갑사단에서 복무한 헤르만 빅스(Hermann Bix)는 독일군에서 가장 성공적인 전차 지휘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 최고의 순간은 이미 승패가 결정된 뒤였던 1945년 3월 22일에 찾아왔다.
실레지아 출신의 베테랑 전차장
빅스는 1914년 실레지아에서 태어나 1935년 군에 입대했다. 1941년에는 제4기갑사단 소속으로 소련 전선에 투입되었다. 특히 같은 해 10월, 자신이 탄 3호 전차(Pz III) 단독으로 소련군 차량화 대대 하나를 궤멸시킨 공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전차가 격파되는 과정에서 두 차례 부상을 입었고, 종전 때까지는 사관후보생 신분으로 복무하게 된다.
동프로이센의 포위망, 그리고 야크트판터
1945년 1월 소련군의 대공세 이후 제4군은 동프로이센에 형성된 월경지 안에 고립된 상태였다. 전차 부족에 시달리던 이들에게 여섯 대의 야크트판터(Jagdpanther) 구축전차가 배속되었다. 이 특별한 차량들은 5호 전차 '판터'를 기반으로 하되, 기존 판터의 75mm 주포 대신 장포신 88mm 포를 탑재한 강력한 구축전차였다.
1945년 3월 22일, 홀로 남은 야크트판터
3월 22일 아침, 빅스와 다른 두 대의 차량은 단치히(현 그단스크)에서 약 40km 남쪽에 위치한 프로이센슈타르가르트(현 폴란드 스타로가르트그단스키)에 배치되어 있었다. 세 대의 야크트판터에 부여된 임무는 단 하나, 소련군의 진격을 충분히 늦춰 고전하는 독일군 보병이 철수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빅스의 차량은 탄약이 바닥나가던 참이었다. 세 대 중 가장 정비가 잘 된 그의 차량조차 유명한 88mm 포용 포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결국 탄약을 다 쓴 나머지 두 대는 후방으로 물러났고, 빅스의 차량만이 잔해 더미 뒤에 숨은 채 홀로 남겨졌다.
첫 교전, 상대는 미제 셔먼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전방 언덕 위에서 극도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소련 전차 두 대가 보였다. 거리는 1,200미터. T-34도 KV-1도 아니었다. 미국제 셔먼 전차였다. 경험상 이 거리에서도 충분히 무력화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두 대 모두 불태워 버렸고, 이반들(소련군)은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했다."
위기의 순간
전차를 잃은 독일 전차병들은 보병으로서 빅스의 '판터 사냥꾼' 측면을 엄호하기 시작했다. 첫 두 대를 파괴한 지 반시간 뒤 또 두 대가 나타났지만, 이들 역시 금세 불타는 잔해로 전락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포수는 장갑관통탄 20발과 고폭탄 5발만 남았다고 보고했다. 같은 시각 엄호하던 보병들마저 철수했고, 빅스의 차량은 완전히 외로워졌다.
"문득 적이 대전차포 두 문을 끌고 오는 게 보였다. 우리는 고폭탄으로 사격을 개시했고, 나무 조각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그들이 가져온 것은 가짜 대전차포였다. 우리가 발포해 위치를 드러내도록 유도하는 함정이었다… 우리는 차량을 후방으로 조금 더 옮겼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야만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머리를 내민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종대 하나가 우리 진지를 향해 빠르게 진격해 오고 있었다. 선두 전차까지 1,200미터. 앞에는 전차가, 뒤에는 보급 차량들이 따르고 있었다…"라고 빅스는 당시를 회상했다.
10분 만에 열한 대
베테랑답게 빅스는 신속하게 지형을 살피고 거리를 계산했다. 야크트판터가 발포했지만 포수의 첫 발은 빗나갔다. 포탄은 커다란 나무를 명중해 반으로 갈라놓았고, 가지가 달린 채 진격 중인 소련 전차 위로 쓰러졌다. 가지에 시야를 가린 그 전차의 운전수는 결국 도랑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다음 소련 전차가 앞선 전차 쪽으로 전진하다 멈춰 섰지만, 야크트판터의 존재는 감지하지 못했다. 소련 전차들은 포탑을 이리저리 돌렸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포탄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반드시 정확히 맞혀야 했다. 상대 전차 하나라도 살려 두면 우리에게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 테니까요." 빅스는 말했다.
"종대 한가운데 있는 전차에 사격을 명령했고, 그 전차는 첫 발에 곧바로 화염에 휩싸였다. 이어 종대 맨 뒤의 전차를 명중시켰다. 역시 불타올랐다. 직후 우리는 마치 사격 연습이라도 하는 듯 나머지 차량들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10분 만에 소련 전차 11대가 파괴되었다. 살아남은 일부 소련 차량들마저, 불타는 전차들의 화염과 연기로 시야가 크게 좁혀진 가운데 방향을 틀어 도주하려다 도랑에 빠져 버렸다.
마지막 상대와 필사의 탈출
"보급 차량들도 치라고 포수에게 명령했더니, 그가 포탄이 두 발밖에 남지 않았다고 답했다." 추가 소련 전차들이 접근해 오자 빅스는 즉시 후퇴를 명령했다.
"소련 전차 한 대가 마을 오른쪽 300미터 거리에 있었다." 마을 밖으로 빠져나오던 중 그 전차가 빅스의 차량을 발견했다. 빅스는 즉시 선회를 명령했다. 그러나 지면은 진창이었고, 무거운 야크트판터의 선회는 매우 더디었다.
소련 전차장 역시 유리한 사격 위치를 잡으려 했지만 그 역시 진창에 발이 묶여 차량 후방이 가라앉기 시작했고, 포신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야크트판터는 간신히 선회를 마쳤고, 마침내 살인적인 88mm 포구 앞에 소련 전차가 정면으로 놓이게 되었다.
소련 전차병들은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차량에서 뛰쳐나와 버렸고, 곧이어 독일군의 포탄이 날아들어 전차를 파괴했다. 빅스는 즉시 운전수에게 야크트판터를 최고 속도로 몰라고 명령했다. 여러 고초 끝에 빅스와 그의 부하들은 무사히 빠져나왔다.

전쟁 이후
빅스와 그의 승무원들은 전쟁을 생존으로 마쳤다. 그는 1956년 서독 연방국방군에 입대해 1970년까지 복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불과 90분여 만에 소련 전차 16대를 격파한 것으로 기록된다. 헤르만 빅스는 1986년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