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나폴레옹의 첫 번째 패배, 칼디에로 전투 – '개들'이 마침내 물다

나폴레옹의 첫 번째 패배, 칼디에로 전투 –  개들 이 마침내 물다

나폴레옹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자 군사사의 거장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안개 같은 출신의 위대한 군인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아스페른에슬링(1809), 러시아 원정(1812~13), 라이프치히(1813), 워털루(1815)에서만 패배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첫 번째 패배는 1796년 이탈리아 전역 중 오스트리아군에게 당한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를 상대한 이 오스트리아군은 적어도 1809년까지 나폴레옹을 몇 번이고 거의 압살할 뻔한 상대였다.

1796년 겨울, 북부 이탈리아의 위기

1796년 겨울, 북부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군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프랑스군은 만토바를 포위한 지 오래였고, 오스트리아군은 이미 두 차례나 이 포위를 깨기 위해 시도해야 했다.

1796년 11월 2일, 요제프 알빈치(Joseph Alvinci) 장군은 28,000명을 이끌고 피아베 강을 도하해 서쪽으로 진격했으며, 그의 최종 목표는 만토바의 포위 해제였다. 동시에 다비도비치(Davidovich) 장군 휘하의 또 다른 오스트리아군 18,000명이 트렌토를 거쳐 남쪽으로 이동했다.

한편 뷔름저(Würmser) 원수가 지휘하는 약 24,000명의 오스트리아군은 만토바에 갇혀 있었다. 만약 포위가 풀린다면 오스트리아군은 프랑스군에 대해 전략적·병력적 우위를 한꺼번에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대응

이 위협에 맞서 프랑스 이탈리아군 사령관 나폴레옹은 약 10,000명 규모의 방부아(Vaubois) 장군 사단에게 다비도비치의 진격을 저지하라고 명령했고, 비슷한 병력의 마세나(Masséna) 장군 사단은 바사노에서 브렌타 강 도하 지점을 통제하도록 파견했다.

그는 오제로(Ozereau) 사단 8,500명을 직속 예비대로 유지했고, 4,300명 규모의 여단 하나를 베로나에 배치해 직접 지휘했다. 아울러 아일랜드 출신 장군 킬메인(Kilmaine)의 사단(약 9,000명)은 만토바 봉쇄 작전을 계속했다.

바사노 전투 – 첫 번째 좌절

11월 6일, 나폴레옹은 가용 병력을 모두 집결해 바사노(Bassano)에서 알빈치를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이어진 격전에서 오스트리아군은 프랑스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 프랑스군의 손실은 3,000명, 오스트리아군은 2,800명이었다.

같은 시각 다비도비치는 맞서던 프랑스 사단을 격파하고 궤멸시켰으며, 자신의 손실 3,500명에 비해 적에게 4,400명의 사상자를 안겼다. 프랑스군에게 상황은 매우 불길해 보였다. 다행히 나폴레옹은 다비도비치의 소극적인 행동 덕분에 구원받았는데, 그는 자신을 상대하는 프랑스군이 크게 증강되었다고 오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칼디에로 전투 – '개들'이 마침내 물다

바사노에서의 방어 승리 이후 알빈치는 진격을 계속했다. 11월 11일, 그의 선봉대는 베로나 동쪽 15km에 위치한 작은 마을 칼디에로(Caldiero)에 도달했다. 오스트리아 선봉 지휘관 호엔촐레른엔징겐(Hohenzollern-Ensingen) 소장은 베로나가 이미 프랑스군에 의해 비워졌다고 믿고 그곳으로 진격했지만, 마세나와 오제로의 사단과 정면으로 마주치며 격퇴당했다. 이 과정에서 오스트리아군의 손실은 사상자 400명이었다.

이후 호엔촐레른엔징겐은 칼디에로 북쪽의 능선으로 후퇴했다. 나폴레옹은 공격을 결심했다. 다음 날, 훗날 원수가 되는 두 장군의 사단 13,000명을 직접 이끌고 나폴레옹은 공격을 개시했다. 마세나 사단은 오스트리아군 우익을, 오제로 사단은 좌익을 공격했다.

그 자리에 방어 태세를 갖춘 오스트리아군은 격렬한 프랑스군의 공격을 용감하게 맞아냈다. 험준한 지형 위에서 결연한 수비자들을 상대로는 돌격 종대든 '혼성 대형(mixed order)'이든 어떤 전술도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 사이 거센 폭우가 쏟아져 양측의 화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마세나는 밀어붙였고, 부하들은 총검 돌격으로 오스트리아군 우익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여단 두 개의 즉각적인 반격이 프랑스군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동시에 프로베라(Provera) 중장의 사단이 전장에 나타났는데, 이것이 바로 알빈치가 '포성 소리'를 따라 보낸 증원군이었다.

프로베라는 즉시 오제로를 공격해 후퇴시켰다.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 나폴레옹은 승자의 추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비를 등에 업고 베로나 방향으로 물러났다.

결과와 의의

이것은 나폴레옹의 첫 번째 패배였지만, 결코 마지막은 아니었다. 프랑스군은 약 2,000명의 병력과 대포 2문을 잃었고, 오스트리아군의 손실은 1,200명에 달했다. 이 패배의 결과로 나폴레옹은 만토바 포위를 해제해야 했는데, 다행히 그것은 일시적인 조치로 끝났다.

나폴레옹의 첫 번째 패배, 칼디에로 전투 –  개들 이 마침내 물다

알빈치 원수는 누구인가

요제프 알빈치 원수는 1735년에 태어나 1810년에 세상을 떠났다. 14세에 입대해 7년전쟁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프로이센과의 짧은 바이에른 왕위계승전쟁에도 참전해 다시 한번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네덜란드에서 프랑스군과 싸웠고, 이탈리아 전역에서도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무려 57년간 군에 복무한 끝에 1808년 원수로 진급했다.

나폴레옹의 첫 번째 패배, 칼디에로 전투 –  개들 이 마침내 물다나폴레옹의 첫 번째 패배, 칼디에로 전투 –  개들 이 마침내 물다

오스트리아군 독일계 보병 연대의 척탄병과 군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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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군의 국경수비대(Grenzer). 이들 역시 이탈리아 전역에서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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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경기병(체케르 기병과 후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