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선의 마지막 몇 주 동안, 이미 크게 와해된 독일군은 인력과 물자 면에서 감당하기 힘든 부족에 직면해 있었다. 이 시기에는 심각한 결손을 안은 채 전장에 투입되는 사단과 여단이 우후죽순처럼 급조되었다. 그런 비상 편성부대 중 하나가 바로 '뮌헤베르크(Müncheberg)' 기갑사단으로, 베를린에서 벌어진 마지막 대규모 전투에 투입된 독일 최후의 기갑부대였다.
'뮌헤베르크' 기갑사단의 창설 명령은 1945년 3월 5일, 유럽의 전쟁이 사실상 이미 기울었을 때 내려졌다.
급조된 최후의 기갑사단
1945년 3월 8일, '뮌헤베르크'는 베를린 동쪽에 위치한 같은 이름의 작은 마을에서 창설되기 시작했다. 여러 부대의 잔존 병력들이 이 사단에 합류했지만, 편제표가 요구하는 인력과 장비 규모에는 한참 미달이었다. 그럼에도 독일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그 시점에서 '뮌헤베르크'는 육군최고사령부(OKH)가 붙잡은 마지막 희망처럼 보였다.
첫 전투, 퀴스트린으로
1945년 3월 말, 이 사단은 보병대대 5개, 박격포 55문, 각종 화포 78문, 전차와 구축전차 49량, 그리고 다수의 장갑차와 반장갑 장갑차량을 보유했으며, 총 병력은 약 6,000명에 불과했다. 사단은 동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테오도어 부세(Theodor Busse) 장군의 제9군에 배속되어 기갑 예비대 역할을 맡게 되었다.
독일 제9군은 고트하르트 하인리히(Gotthard Heinrich) 장군이 지휘하는 비스툴라 집단군 산하에서 소련군의 베를린 진격로를 막아서던 최정예 부대였다.
사단 병력은 3월 21일 코트부스에 집결했다. 베를린에서 동쪽으로 70km 떨어진 곳에는 당시 포위된 도시 퀴스트린(Küstrin)이 있었다. 이 도시는 붉은 군대가 폴란드에서 베를린 성문 앞까지 진격한 대공세 도중이던 1월 31일부터 사실상 포위 상태에 놓여 있었다.
소련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완전한 봉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군이 필사적으로 사수하는 좁은 회랑 하나가 퀴스트린 수비대와 독일 본대 전선을 연결하고 있었다.
3일간의 치열한 전투
'뮌헤베르크'는 3월 22일 퀴스트린 인근에 도착했다. 히틀러는 직접 반격을 명령하여 이 중요한 도시의 포위를 풀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독일군의 반격을 역이용해 소련군 역시 퀴스트린을 완전히 포위하려는 공격을 개시했다.
소련군의 공격은 성공했고 도시는 포위당했다. 소련군의 목표는 도시 수비대를 감시하는 내곽 방어선과, 독일군의 어떠한 반격도 격퇴할 임무를 맡은 외곽 방어선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뮌헤베르크'는 카를 데커(Karl Decker) 장군 휘하의 제23기갑군단에 배속되었고, 제25기갑척탄병사단도 이 군단에 속해 있었다. 제39군단은 '뮌헤베르크'를 선봉으로 삼아 소련군의 외곽 방어선을 돌파하려 했으나, 전력이 크게 부족한 두 개의 독일 사단은 압도적인 소련군을 뚫지 못했다.
그럼에도 '뮌헤베르크'는 이 3일간의 전투에서 뛰어난 전과를 올려 3월 22일부터 25일 사이 소련 전차 200대를 파괴했다. 그러나 반격은 실패로 돌아갔고, 소련군은 퀴스트린 주변의 외곽 포위선 구축을 완성했다.
두 번째 반격과 참패
'뮌헤베르크'는 이 전투에서 큰 손실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최악은 아직 다가오지 않은 상태였다. 평소처럼 전력 균형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히틀러는, 수도에서 불과 70km 떨어진 동부 전선에서 3월 27일 "퀴스트린의 포위를 풀기 위한" 새로운 '해방' 공격을 개시하라고 명령했다.
히틀러는 공격의 책임을 부세 장군에게 맡겼다. 부세는 당시 OKH 참모총장이던 하인츠 구데리안(Heinz Guderian) 장군과 함께 작전을 계획했으며, 오데르 강의 프랑크푸르트 지역에서 마지막 가용 예비대를 투입해 양동 공격을 가하라는 히틀러의 계획을 따르기를 거부했다.
'뮌헤베르크'는 제20·제25기갑척탄병사단, '퓌러' 기갑척탄병연대, '천일야화' 전투단, 그리고 무장친위대 제502중전차대대와 함께 제23기갑군단에 재배속되었다. 그러나 소련군은 이미 이 지역에 막대한 증원을 이송해 둔 상태였고, 독일군은 문자 그대로 적의 거대한 병력과 전차 부대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소련 포병은 불과 강철의 비를 퍼부으며 독일군 진지를 초토화했다.
결국 공격하는 독일군의 용맹에도 불구하고 공세는 피바다 속에 가라앉았다. 한 독일 장교는 상관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붉은 포병이 우리를 향해 너무나 파괴적인 화망을 퍼붓고 있어, 신경이 완전히 닳은 병사들이 공황 상태로 후방으로 도주하고 있습니다."
공격의 선봉이었던 '뮌헤베르크'는 소련군에게 막대한 사상자를 안겼지만, 적 전선을 돌파해 포위된 수비대와 합류하는 데는 실패했다. 소련군은 '뮌헤베르크'의 측방을 담당하던 제20기갑척탄병사단에 반격을 가해 완파했다. 뮈머트(Mummert) 중장은 포위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뮌헤베르크'의 후퇴를 명령했고, 사단은 이번 이탈 과정에서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히틀러의 격노, 구데리안과의 최후의 충돌
베를린으로 돌아온 히틀러는 실패 소식에 분노한 상태로 부세와 구데리안을 자신의 벙커로 불렀다. 부세가 공세 실패의 원인에 대한 보고를 시작하자마자 히틀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태만과 비겁으로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부세는 침묵했지만, 구데리안은 서슬 퍼렇게 히틀러의 말을 끊었다. "저는 이미 설명드렸습니다…"라고 그가 말을 시작하자, 분노로 얼굴이 붉어진 히틀러는 끝까지 말하지 못하게 했다. "설명, 변명. 그게 당신들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게 전부냐? 그럼 말해보게, 퀴스트린 실패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 병사들인가, 부세인가?"
이제 구데리안이 '폭발'할 차례였다. "터무니없는 소리! 이건 전부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그는 얼굴이 상기된 히틀러 앞에서 소리쳤다. "부세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명령대로 모든 가용 탄약을,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용하셨습니다. 병사들도 잘못이 없습니다. 사상자 수를 보십시오. 병사들은 그들의 의무를 다했습니다. 그들의 자기희생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실패했다, 실패했다고!" 히틀러는 되소리쳤다. "참모부의 놈들은 전부 어리석은 사기꾼들이요, 나를 속이고 거짓 정보를 준 광신도들이다." 극도로 격분한 구데리안은 마침내 전례 없는 폭발을 일으켰다.
"거짓 정보요? 러시아군의 전력에 관한 갈렌 보고서도 거짓 정보였습니까? 물론 아니겠지요. 그럼 쿠를란트에 고립된 우리 사단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에 대해 누가 거짓 정보를 드렸습니까? 대체 언제 그들을 그곳에서 철수시키실 겁니까?" 그는 히틀러에게 소리쳤다. 어떤 답변 대신 히틀러가 내린 것은 구데리안의 해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