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15세기에 벌어진 므기도 전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는 전투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당시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이끄는 이집트군은 카데시 국왕이 지휘하는 가나안 연합군과 격돌했습니다.
이 전투는 양측 군대의 사상자 수가 기록된 최초의 전투이자, 합성궁(컴포지트 보우)이 실전에 사용된 것으로 기록된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 문헌에 따르면 전투는 기원전 1457년 4월 16일에 일어난 것으로 전해지며, 다른 자료들은 기원전 1482년 또는 1479년으로 추정합니다.
이집트의 첫 번째 방어선
투트모세 3세는 고대 이집트를 영토 확장과 국력의 정점으로 이끈 파라오였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시리아·레바논에 해당하는 가나안 왕국들은 강대국 히타이트 제국을 막는 이집트의 첫 방어선 역할을 하는 속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세력들은 히타이트와 미탄니의 부추김을 받고 이집트의 지배에 반기를 들었고, 요새화된 도시국가 카데시의 국왕이 반란을 주도했습니다. 므기도는 이스라엘 북부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카데시 왕의 남쪽 '방패' 구실을 하면서 이집트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이어지는 주요 통로를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투트모세 3세의 원정
반란 소식을 접한 파라오는 전차와 보병으로 구성된 1만~2만 명의 강력한 군대를 직접 이끌고 므기도로 진격했습니다. 카데시 왕과 므기도 왕 또한 병력을 모아 시리아인, 아람인 등 다른 가나안 세력까지 합쳐 결국 1만~1만 5천 명의 군대를 편성했습니다.
이집트군은 10일간의 행군 끝에 우호적인 도시 가자에 도착했고, 이후 북진을 계속해 카멜 산을 넘어 마침내 므기도에 근접했습니다. 그런데 도시로 통하는 길은 세 갈래였습니다.
그중 두 개는 비교적 평탄했지만, 나머지 하나는 험하고 위험한 좁은 샛길이었습니다. 투트모세 3세는 장군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험한 길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적이 예상하지 못할 길이기 때문이라며, 신하들을 설득했습니다.
과연 카데시 왕은 두 개의 평탄한 길목에는 강력한 부대를 배치했지만, 통행이 어려운 샛길은 무방비로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투트모세의 군대는 아무 저항 없이 므기도 앞에 당도했고, 오히려 적군은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전투와 공성전
투트모세 3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성 밖에 진영을 친 뒤 다음 날 여명과 함께 공격을 개시한 것입니다. 전략적 기습을 당한 카데시 왕은 반격 태세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가나안군이 더 높은 지대를 차지해 전술적으로 유리함을 누렸음에도, 이집트군의 맹공을 끝내 버티지 못했습니다.
양측 모두 약 1천여 대의 전차와 앞서 언급한 보병 병력이 참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투트모세 3세는 직접 적 중심부를 향해 돌격을 이끄는 동시에, 다른 부대에게는 적 진영의 측면을 공격하게 하는 협공 작전을 명령했습니다.
파라오의 기세와 정교한 기동 작전은 빛을 발했습니다. 애초 카데시 왕의 군대는 이집트군처럼 균질한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전차들이 적진을 짓밟으며 쓸어버리자 곧 공황이 번졌습니다.
가나안군은 와해되었습니다. 성벽 근처에 있던 병사들은 성문을 닫아버린 성 안으로 피신했고, 남겨진 동료들은 이집트군의 칼에 학살당했습니다. 카데시 왕과 므기도 왕은 겨우 몸을 피해 도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일부 병사는 성벽 위 사람들이 던져준 밧줄을 타고 올라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수천 명은 그렇게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이집트 기록에 따르면 수천 명의 적이 살해되거나 포로로 잡혔다고 합니다. 승리 후 투트모세 3세는 견고히 요새화된 도시를 포위했습니다. 방어군의 항복을 받아내기까지 무려 7개월의 공성전이 필요했습니다. 이집트 기록에 따르면 전투와 공성전에서 가나안군의 사상자는 1만 1천 명을 넘었습니다.
이집트군은 또한 적의 전차 924대와 갑옷 200벌, 수천 필의 말과 소, 양을 노획했습니다. 물론 이집트의 손실도 커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약 5천 명에 달했습니다.
당시의 관행과 달리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던 투트모세 3세는 도시를 파괴하거나 주민을 학살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처신 덕분에 다른 도시들도 잇달아 항복했습니다. 다만 이집트의 지배를 완전히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이후에도 추가적인 원정이 필요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어떤 견해에 따르면 '므기도'라는 이름에서 성경의 '아마겟돈(Armageddon)'이라는 단어가 유래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마겟돈은 종말에 벌어질 거대한 최후의 전투와 연관된 용어입니다.


루크소르 박물관의 석상에 묘사된 파라오 투트모세 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