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왕은 전장을 떠나고 군은 승리했다… 역전된 전선에서 벌어진 몰비츠 전투

왕은 전장을 떠나고 군은 승리했다… 역전된 전선에서 벌어진 몰비츠 전투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군사 충돌 중 하나로, 인류 최초의 '세계 규모 전쟁'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 전쟁에는 실레지아 지역에서 벌어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충돌, 즉 제1차·제2차 실레지아 전쟁이 포함된다.

1740년 12월, 프리드리히 2세(프리드리히 대왕)가 직접 이끄는 프로이센군이 당시 오스트리아령이던 실레지아를 침공하면서 첫 번째 충돌이 시작되었다. 당시 오스트리아는 외교와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처참한 상황에 놓여 있었고, 적국들은 이 약점을 서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으로 삼았다.

오스트리아를 에워싼 강대국들의 야망

프랑스, 스페인, 바이에른은 마리아 테레지아의 황위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명분 아래 오스트리아에 맞서 동맹을 결성했다. 프랑스는 독일 여러 국가에서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을 말살하고 라인강 양안을 장악하려 했다. 스페인은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던 이탈리아 영토를 빼앗는 것을 노렸고, 바이에른은 자국 출신 황제 후보를 옹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오스트리아를 둘러싼 혼란과 다층적인 위협을 틈타, 작은 나라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2세 역시 부유한 실레지아를 손에 넣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프로이센의 침공과 오스트리아의 반격

프로이센의 공격은 오스트리아를 완전히 기습했다. 그 결과 짧은 시간 안에 실레지아는 사실상 전역이 함락되었다. 여러 요새들과 프로이센군의 진격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오스트리아 경부대만이, 이 땅에 남은 오스트리아 존재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한편 빈의 오스트리아 정부는 잃어버린 실레지아를 되찾기 위해 병력을 소집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1741년 4월, 이번에는 오스트리아군이 옛 영토로 다시 밀고 들어갔다. 여러 요새에 대한 포위를 풀어내고 실레지아의 광범위한 지역을 회복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스트리아군은 고도의 기동을 감행해, 프리드리히 본인이 직접 지휘하는 프로이센군의 배후에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프로이센군은 결국 적이 던져준 '역전된 전선'의 결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프로이센군은 두 개의 강과, 오스트리아군이 장악한 몰비츠(Mollwitz) 마을 사이에 갇힌 형국이었다. 주요 보급로가 바로 이 마을을 지나갔고, 프리드리히의 군대는 이 길을 통해서만 프로이센 본토와 연결될 수 있었다.

왕은 부재 중… 그럼에도 승리는 프로이센의 것

1741년 4월 10일, 프로이센군이 먼저 공격에 나섰다. 프로이센군은 21,000~23,000명에 달했고, 니페르크(Neipperg) 원수가 지휘하는 오스트리아군은 16,000명을 넘지 못했다. 프로이센군은 보병을 중앙에 두 줄로 배치하고 기병을 양익에 두는 진형으로 전투 대열을 갖췄다. 보병들은 밀집된 직사각형 평행사변형 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이센 기병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적에 비해 열세였다. 전투는 초오후에 시작되었다. 용맹한 뢰머(Römer) 장군이 이끄는 좌익의 오스트리아 기병은 즉시 우익의 프로이센 기병에게 돌격을 감행해 그들을 무질서한 패주로 몰아붙였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기병이 보인 굴욕적인 도주를 막으려 애썼지만 헛수고였고, 그 과정에서 그 자신도 죽음에 이를 뻔했다.

그러나 프로이센 기병을 압도했던 오스트리아 기병은, 적 보병 진선을 돌파하려는 시도 과정에서 문자 그대로 와해되고 말았다. 지휘관 뢰머 장군 본인도 이 필사적인 공격 도중 전사했다. 한편 프리드리히는 고생 끝에 설득당해 전장을 떠났다. 이제 노련한 슈베린(von Schwerin) 원수가 군의 지휘를 맡았다.

슈베린 원수는 자신의 보병이 지닌 높은 훈련 수준과 전투력에 대한 절대적 확신을 바탕으로, 우익 측면에 오스트리아 기병이 위협적으로 도사리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대한 '살아있는 평행사변형'을 이룬 보병 대열에게 적 중앙으로의 전진을 명령했다.

과연 프로이센 보병은 완벽한 질서를 유지하며 전진해 오스트리아 기병의 방해 시도를 하나하나 격퇴했고, 오스트리아 보병을 조각조각 분쇄해 나갔다. 오스트리아군은 비교적 질서 있는 퇴각을 선택하며 병사 4,500명과 대포 7문을 전장에 남겨두었다. 승리한 프로이센군 역시 4,600명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