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다비아의 스테판 대공(Ștefan cel Mare)은 유명한 블라드 드라쿨의 사촌으로, 중세 후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 중 한 명이자 튀르크(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운 열렬한 기독교 수호자였다. 베사라비아 지역은 몰다비아 통치자와 오스만 술탄 메흐메트 2세 사이의 오랜 마찰 지점이었다. 베사라비아를 둘러싼 몰다비아와 튀르크의 분쟁은 1420년부터 시작되었으며,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뒤 튀르크는 다시 몰다비아를 압박해 조공을 바치게 만들었다.
1457년 스테판은 사촌의 도움으로 몰다비아의 군주 자리에 올랐다. 1465년 메흐메트 2세는 스테판에게 요충 항구 도시 킬리아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스테판은 이를 거부했고, 준비를 마친 뒤 튀르크의 속국인 라두가 다스리던 왈라키아를 역으로 침공했다.
1473년 라두는 1만 2천 명의 튀르크군과 자신의 6천 명 병력으로 스테판과 재차 맞섰으나 패배했고, 몰다비아군은 부쿠레슈티마저 점령했다. 그러나 곧 새로운 튀르크군의 압박으로 스테판은 자국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메흐메트는 다시 킬리아의 할양을 요구했다.
스테판이 또다시 거부하자 메흐메트는 술레이만 파샤에게 강대한 군세를 규합해 이 기독교 군주를 토벌하라고 명령했다. 술레이만은 무려 12만 명의 막강한 대군을 소집했고, 여기에 1만 7천 명의 발라크인과 2만 명의 불가리아 보조병이 합류했다. 튀르크 기병대만 해도 3만 명에 달했다.
물론 스테판이 이에 필적하는 병력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했다. 서방에 도움을 청했지만 외면당했다. 헝가리는 1,800명을, 폴란드는 2,000명을 보내는 데 그쳤다. 스테판은 독일계가 많은 5,000명의 트란실바니아 정예병을 고용했고, 자국 정규군 1만 5천 명에 더해 농민과 무기를 들 수 있는 모든 남성까지 총동원했다. 결국 그의 군대는 총 4만 9천 명과 대포 20문이 전부였다.
초지전술과 매복 작전
튀르크 대군은 1474년 12월 몰다비아를 침공했다. 스테판은 적을 최대한 소진시키기 위해 초지전술을 택했다. 경부대들은 곳곳에 매복진을 설치해 주력에서 이탈한 적을 하나씩 섬멸했고, 주민들은 가축과 함께 북쪽으로 피난해 튀르크군이 식량과 물자를 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술레이만은 스테판의 수도 수차바를 향해 진군을 계속했다. 혹한과 물자 부족 때문에 행군 속도는 느렸다. 스테판은 양쪽이 삼림으로 덮인 구릉지대에 보호받는 바슬루이의 협곡에서 적을 기다렸고, 그 앞에는 바를라드 강이 흐르고 있었다. 때는 1475년 1월 10일이었다.
강에는 나무 다리 하나만 놓여 있었다. 스테판은 병력을 두 개의 전열로 배치했다. 첫 번째 전열의 우익에는 트란실바니아 용병이, 중앙과 좌익에는 스테판의 정규군이 자리했다.
두 번째 전열에는 징집된 농민들이 배치되었다. 그러나 스테판은 정규군 일부를 좌익의 삼림 구릉지 깊숙이 매복시켰고, 자신은 예비대의 선두에 직접 서서 튀르크군을 기다렸다.
스테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또 다른 계책을 폈다. 첫 번째 전열의 병력과 나팔수들을 자신의 진지와 튀르크군 사이에 있는 포둘 인알트의 늪지 골짜기 한가운데로 보낸 것이다. 골짜기에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를 들은 술레이만은 몰다비아군이 골짜기 한가운데 집결해 있다고 믿었다.
세 개 사단으로 나뉜 튀르크군은 몰다비아군의 첫 번째 전열을 향해 진격했다. 그러나 첫 번째 전열은 교전하지 말고, 두 번째 전열 앞의 지정 위치와 매복지 방향으로 천천히 후퇴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다.
4일간의 대학살
술레이만은 완벽하게 함정에 빠졌다. 그는 첫 번째 적을 공격했고, 병사들이 후퇴하는 것을 보고 그 뒤를 무리하게 쫓았다. 갑자기 몰다비아군의 대포가 포성을 터뜨렸고, 궁수와 초기 화승총 사수들이 뒤이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자, 몰다비아군은 다가오는 튀르크군의 발소리를 단서로 조준했다.
동시에 스테판의 경기병들이 적을 기습한 뒤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튀르크군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며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많은 병사들이 늪지 진창에 빠져 움직이지 못했고, 다른 이들은 화살과 탄환에 쓰러졌다. 튀르크군은 간신히 몰다비아군의 주 저항선 앞에 도달했다.
술레이만은 7,000명의 스파히 기병을 트란실바니아 부대에 투입했으나 오히려 격퇴당했다. 이어 아마도 안개 탓에 혼란이 일었고 그들마저 도주했다. 튀르크군이 몰다비아군을 밀어붙이던 바로 그 순간, 스테판이 예비대를 이끌고 돌출했다.
나팔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스테판과 그의 병사들은 튀르크군의 측면으로 돌진해 적을 완전히 쓸어버렸다. 이윽고 안개 속에서 공포가 번졌고, 술레이만은 병사들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잃었다. 튀르크군은 우왕좌왕 도주했고, 이후 3일 동안 몰다비아 경기병과 스테판의 폴란드 기병에게 끝없이 추격당했다.
튀르크군은 헤아릴 수 없는 참화를 당했다. 4만 명 이상이 살해되었지만 포로는 겨우 4,000명에 불과했다. 몰다비아인들이 특별히 자비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 대부분은 학살당했다. 한편 발라크인들은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가장 먼저 도망친 부대였다.
전투와 추격이 끝난 뒤 스테판은 원조에 대한 보답으로 튀르크 파샤 4명과 군기 36개를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에게 선물로 보냈다. 교황과 헝가리 왕 마티아스 코르비누스에게도 같은 전리품을 보냈다. 주목할 점은 스테판이 승리를 축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엄격하게 40일간 금식하며 이 승리를 전부 하느님께 바쳤다.

병사들과 함께한 스테판 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