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블루 디비전': 소련 대군을 상대로 싸운 스페인 자원부대의 전투 기록

 블루 디비전 : 소련 대군을 상대로 싸운 스페인 자원부대의 전투 기록

중립국 스페인이 동부전선에 보낸 의용군

스페인은 제2차 세계대전 내내 공식적으로 중립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코는 스페인 내전 당시 히틀러로부터 받았던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독일군을 대신해 '엄격히 볼셰비키를 상대로 하는' 동부전선에 한해 자원병 모집을 허용했습니다.

히틀러는 스페인 자원병의 파견을 승인했습니다. 프랑코는 처음에 4,000명 규모의 여단을 구상했지만, 자원자가 너무나 몰려 결국 18,000명 규모의 정규 사단이 편성되었습니다.

편성과 구성

장교와 부사관의 절반은 실전 경험을 갖춘 스페인 군 출신이었습니다. 많은 자원병은 스페인 팔랑헤 민족주의 정당의 당원이었으며, 일부는 내전 당시 공화파 진영에서 싸웠던 전사자들이거나 '혈세를 씻을' 기회를 찾던 공화파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이 외에 소수의 포르투갈인 자원병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팔랑헤 당원들이 입던 파란색 셔츠에서 유래해 '블루 디비전(푸른 사단)'이라 불린 이 부대의 초대 사단장은 아구스틴 무뇨스 그란데스(Agustín Muñoz Grandes) 장군이었습니다. 스페인 자원병들은 1941년 7월 중순부터 독일에 도착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사단은 독일 육군 전투 서열에서 제250사단이라는 번호를 부여받았습니다.

사단은 원래 4개 보병연대를 두고 있었으나, 곧 당시 독일 표준 보병사단과 같은 체제로 재편성되었습니다. 262·263·269 보병연대 등 3개 보병연대를 중심으로 강습대대, 포병연대, 대전차대대, 정찰대대, 공병대대, 통신대대, 예비대대와 각종 지원부대가 배속되었습니다.

레닌그라드 전선 배치

제250보병사단은 처음에 중앙집단군 예하에 배속되었으나, 이후 북부집단군으로 옮겨져 독일 제16군 산하에서 레닌그라드 전선에 투입되었습니다. 사단은 일멘 호 인근 볼호프 강 유역에 배치되어 50km에 달하는 광범위한 전선을 담당했습니다.

이후 네바 강 남쪽으로 이동해 레닌그라드 봉쇄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 사단 지휘권은 에밀리오 에스테반 인판테(Emilio Esteban Infante) 장군에게 넘어갔습니다. 지옥 같은 전투와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사단은 명맥만 유지할 정도로 약화되어 5,900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크라스니 보르 전투

1943년 2월 10일, 소련 제55군은 레닌그라드 포위를 돌파하기 위해 스페인군 진지를 공격했습니다. 최소 1,000문에 달하는 포, 로켓포, 박격포가 제250사단 진지를 향해 포문을 열었고, 2시간에 걸친 맹포격 이후 전차로 증강된 소련군 소총사단 3개가 돌진해 왔습니다.

자신들의 거의 7배에 달하는 적과 마주한 스페인군은 어느 방향으로도 철수할 길이 없어 필사적으로 끝까지 싸웠습니다. 소련군은 스페인군 전선을 돌파했지만, 크라스니 보르 마을에서는 한 스페인 중대가 철도역에 진지를 구축한 채 단 40명만 남은 상황에서도 소련군의 모든 공격을 격퇴해 냈습니다.

사방이 포위된 스페인군은 그래도 싸우다 죽겠다고 결심한 듯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공병, 포병, 행정 보조 요원까지 모두 보병처럼 싸우며 소련군의 공격 속에서도 마을 동쪽 지역을 목숨 걸고 사수했습니다. 소련군은 스페인군 야전병원마저 전차로 공격했지만, 스페인군은 몰로토프 칵테일로 즉각 반격해 여러 대의 소련 전차를 불태웠습니다.

전투는 오후까지 계속되었고, 불굴의 스페인군은 끝까지 버텨냈습니다. 독일군의 증원이 도착하자 스페인군은 마을 서쪽 이조라 강 방면으로 철수해 그곳에서 소련군의 모든 공격을 맞아냈습니다. 결국 소련 제72소총사단의 공격에 밀려 한 차례 더 소규모 후퇴를 했지만, 제72사단은 이 전투에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스페인군을 상대로 병력의 70%를 잃었고, 스페인군 역시 막대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다음 날에도 전투는 이어져 소련군은 마을 안의 마지막 스페인군 저항을 소탕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소련 제55군은 이미 약 35%의 병력 손실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스페인군은 다음 날 소규모 역공을 감행했고, 2월 13일 소련 제55군은 제67군의 지원을 받아 마지막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하지만 소련군의 공격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모두 격퇴되었습니다. 스페인군의 필사적인 저항 덕분에 소련군의 '폴라르 스타(북극성)'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2월 15일, 제250사단은 이 전투로 3,945명의 전사·부상·실종자가 발생했다고 보고했지만, 그 대가로 11,000명의 소련군을 사살했다고 전해집니다.

해산과 귀환

총 45,000명이 넘는 스페인인이 제250사단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러나 크라스니 보르 전투에서의 막대한 손실과 서방 연합국이 프랑코 정권에 가한 강한 압박 속에서, 마드리드는 사단 철수를 결정합니다. 독일과의 치열한 협상 끝에 사단은 1943년 10월 동부전선에서 철수했습니다. 그러나 약 3,000명은 자발적으로 독일군에 잔류해 베를린 전투가 벌어질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블루 디비전 : 소련 대군을 상대로 싸운 스페인 자원부대의 전투 기록
 블루 디비전 : 소련 대군을 상대로 싸운 스페인 자원부대의 전투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