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처캄프바겐 I(Panzerkampfwagen I), 흔히 판처 I(Pz I)로 불리는 이 전차는 재무장을 선언한 독일군의 첫 번째 전투전차였습니다. 1934년 제식 채택되었지만, 사실상 더 강력한 후속 전차 개발을 위한 시험용 차량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중량은 A형(Ausf A) 기준 5.4톤, B형(Ausf B)은 약 6톤에 불과했고, 장갑 최대 두께는 13mm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무장 역시 7.92mm MG13 기관총 2정이 전부였습니다. 그럼에도 판처 I는 스페인, 중국, 폴란드, 프랑스, 네덜란드, 발칸 반도를 거쳐 소련 침공 초기까지 투입되었습니다. 특히 동부 전선에는 완전히 구식이 된 상태로 무려 410대가 참전했습니다.
스페인 내전, 뜻깊은 실전 데뷔
판처 I의 실전 데뷔 무대는 스페인 내전(1936~1939)이었습니다. 소련이 공화파를 T-26 전차와 BT-5 경전차로 지원한 것에 맞서, 독일은 프랑코의 국민파에 총 106대(자료에 따라서는 122대)의 판처 I B형을 제공했습니다.
첫 원정 부대는 41대의 전차로 구성되었으며, 당시 지휘관이던 빌헬름 폰 토마(Wilhelm von Thomas) 중령의 이름을 따 '폰 토마 분견대'로 명명되었습니다. 이 부대는 콘도르 군단(Legion Condor) 지상군 산하에 편성되었습니다.
국민파의 초기 승세에 고무된 프랑코는 마드리드 함락이 어렵지 않으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공화파 진영에 45mm 포를 장착한 소련제 T-26 전차와 BA-10 장갑차가 소련 승무원과 함께 도착하면서 상황은 급변합니다. 판처 I는 1936년 10월 30일 첫 전투에 투입되었고, 빈약한 무장에도 불구하고 숙련된 승무원 덕분에 의외로 준수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치명적인 한계와 수많은 개조 시도
문제는 압도적인 화력 격차였습니다. 소련제 전차와 장갑차는 45mm 주포를 갖추고 있어 안전거리에서 판처 I를 손쉽게 파괴할 수 있었지만, 판처 I가 기갑탄으로 적 전차를 격파하려면 150m 이내까지 접근해야 했습니다.
반면 소련의 45mm 포는 1,000m 거리에서도 독일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민파 진영이 T-26 전차를 확보하거나 인도하는 자에게 500페세타의 현상금을 걸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1937년에는 이탈리아제 브레다(Breda) M1935 20mm 포를 얹은 개조형이 단 4대만 만들어졌는데, 개조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무렵 국민파는 여러 대의 T-26를 노획한 반면, 판처 I는 이미 45대가 손실된 상태였습니다. 이후 프랑스제 25mm 포, 37mm 포, 소련제 45mm 포 탑재 시험이 진행되었으나 모든 시험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일부 차량은 화염방사전차로 개조되기도 했습니다. 스페인 내전을 살아남은 판처 I는 스페인 육군에서 1945~46년경까지 운용되었습니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전격전' 교리
기관총 무장만으로 적 전차와 정면 대결하기 어려웠음에도, 판처 I는 콘도르 군단 항공기의 근접 지원 아래 집중 운용되며 뚜렷한 존재감을 남겼습니다.
바로 스페인의 대지에서 항공-지상 협동전을 아우르는 '전격전(Blitzkrieg)' 교리의 초석이 마련되었습니다. 판처 I가 적 전차 앞에서 완전히 무력했다 해도, 훗날 프랑스와 소련에서 연합군이 독일 전차 대비 질적 우위를 손쉽게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 작은 전차가 남긴 교훈의 값어치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브레다 20mm 포를 장착한 판처 I 전차

판처베펠스바겐(Panzerbefehlswagen) 지휘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