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슈샤 전투: 소수의 아르메니아군이 아제르바이잔군을 격파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의 승리

슈샤 전투: 소수의 아르메니아군이 아제르바이잔군을 격파한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의 승리

슈샤 전투: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의 결정적 순간

슈샤 전투는 1992년 5월 8일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중 아르메니아군과 아제르바이잔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였다. 슈샤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산악 지대의 요충지로, 이 도시를 점령한 세력은 결정적인 전략적 우위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원래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공화국의 자치주였다. 그러나 1988년 이 지역 정부가 아제르바이잔에서 분리하여 아르메니아와 통합하기로 결정하면서 갈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아제르바이잔인들의 강한 반발로 소련 붕괴 이전부터 첫 충돌이 시작되었고, 1992년에는 이 분쟁이 완전한 전면전으로 번졌다.

분쟁의 시작

1992년 1월 26일, 슈샤에 주둔하던 아제르바이잔군은 스테파나케르트로 진격하기 위해 아르메니아 마을 카리다크를 공격했다. 그러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고, 아제르바이잔군은 70명의 사망자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은 채 후퇴했다. 이 승리에 고무된 아르메니아군은 역공을 감행해 슈샤를 점령하기로 결정했다.

슈샤는 스테파나케르트에서 불과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이곳에서 포병 화력으로 스테파나케르트 시내를 직접 포격할 수 있었다. 슈샤는 해발 600m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 오래된 요새가 남아 있었다. 아르메니아군은 병력과 무장 면에서 적에 비해 명백히 열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결단했다.

작전은 아르카디 테르타데보시안(Arkady Ter-Tadevosyan) 소장이 입안했으며, 일련의 기만 공격으로 아제르바이잔군을 도시 밖으로 유인하는 전략이 담겨 있었다. 아제르바이잔군은 약 2,500명의 병력과 여러 대의 전차, 다연장 로켓포(MRL)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포병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아르메니아군이 투입한 병력은 1,000명, 전차 4대, Mi-24 헬기 2기에 불과했다.

공격 개시

1992년 5월 8일 저녁, 아르메니아군은 예비대를 따로 확보한 상태에서 네 방향으로부터 동시에 중대 규모의 병력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아르메니아군의 신속한 진격으로 인해 아제르바이잔군의 최대 강점이었던 포병 화력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제르바이잔군 지휘관 엘브루스 오루예프(Elbrus Oruyev) 휘하에는 체첸 의용병 부대도 배속되어 있었다. 초반에는 아제르바이잔군이 아르메니아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아제르바이잔군은 심지어 대전차 미사일이 없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아르메니아군 T-72 전차 한 대를 격파하고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전투는 치열하게 이어졌다. 오후에는 아르메니아군이 아제르바이잔군의 다연장 로켓포 3문을 파괴하고 나머지 화력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점차 아르메니아군은 구요새의 성벽을 타고 올라 도시 안으로 진입했고, 수적으로 열세였음에도 적을 도시 남쪽 끝으로 밀어붙였다.

5월 9일 아침이 되자 아르메니아군은 도시 전체를 완전히 장악했다. 아제르바이잔군은 무질서하게 패주했다. 특히 가장 완강하게 싸웠던 체첸 의용병들이 도시를 끝까지 방어한 마지막 부대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아르메니아군의 손실은 출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최대 58명의 사망자로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반면 아제르바이잔군과 그 동맹군은 최소 150명이 전사하고 300명이 부상당했으며 약 60명이 포로로 잡히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전투는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 아르메니아가 거둔 첫 번째 승리였으며, 이후 전황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