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페트리코프카 전투(1941)…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가 거둔 가장 큰 승리

페트리코프카 전투(1941)…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가 거둔 가장 큰 승리

이탈리아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위 '열강'으로 불린 나라들 가운데 전력이 가장 취약한 축에 속했다. 병력은 충분했고 전술 교리 자체도 나쁘지 않았지만, 장교와 병사들의 훈련 수준, 무기와 군수물자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유능한 지휘관 아래에서 이탈리아 병사들은 놀라운 전과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위대한 승리는 바로 당시 소련의 영토였던 우크라이나 땅에서 거두어졌다.

이탈리아 원정군단

프랑스, 그리스 본토,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화려한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독일의 소련 침공(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자 동맹인 히틀러를 지원하기 위해 군단 규모의 파병을 결정했다.

러시아 원정 이탈리아군단(Corpo di Spedizione Italiano in Russia – CSIR)은 신속기동의 제3기병사단 '첼레레', 제9기계화보병사단 '파수비오', 제52기계화보병사단 '토리노', 그리고 검은 셔츠단(흑색셔츠) 제63돌격여단 '탈리아멘토'로 구성되었다. 1941년 9월, 이 군단은 조반니 메세 중장의 지휘를 받으며 우크라이나 전역에 배치되었다.

교두보 확보

9월 9일, 제9보병사단 파수비오는 독일 제17군 예속으로 배속되었다. 며칠 후 이탈리아 사단은 드니프로 강의 지류인 오릴 강 방면으로 이동했고, 9월 23일에는 차리찬카에서 드니프로 강에 교두보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소련군은 사흘간 이탈리아 교두보에 맹렬한 역공을 퍼부었지만 이탈리아군은 끝까지 버텨냈다.

더 북쪽에서는 파수비오 사단의 제80보병연대가 보이노프카 일대에 또 하나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독일군은 이 두 교두보를 발판 삼아 해당 지역의 소련군을 포위하는 작전을 추진했다.

독일군의 계획은 두 이탈리아 교두보에서 출발해 양익이 페트리코프카(현재의 우크라이나 페트리키우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합류하는 대규모 포위 섬멸 기동이었다. 북쪽에서는 파수비오 사단이, 남쪽에서는 토리노 사단이 공격을 담당했으며, 이탈리아 사단들은 메세의 통합 지휘를 받았다. 이후 점차 다른 CSIR 소속 부대들도 전투에 투입되었다.

공격 개시

9월 28일 아침, 공격이 시작되었다. 토리노 사단은 광범위한 지뢰밭을 앞세워 완강히 방어하던 소련 제261소총사단과 정면으로 맞섰다. 그럼에도 이탈리아군은 진격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남쪽 카멘카 인근에서 적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파수비오 사단 역시 전진에 성공했고, 다음 날인 9월 29일 두 이탈리아 사단은 최대한 신속히 페트리코프카로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동시에 제3기병사단은 형성된 포위권 내부의 잔존 적 소탕에 착수했다. 탈리아멘토 여단의 검은 셔츠들로 증강된 토리노 사단은 모든 소련군의 저항을 분쇄하고 다수의 포로를 생포하며 최초로 페트리코프카 시내에 도달했다.

파수비오 사단의 도착으로 승부는 완전히 기울었다. 9월 30일까지 이어진 포위망 소탕 작전에서 만 명이 넘는 소련군 포로가 생포되었다. 반면 이탈리아군의 손실은 극히 경미해 전사 87명, 부상 190명, 실종 14명에 그쳤다. 대량의 군수물자 역시 이탈리아군의 손에 넘어왔다.

이 승리는 무솔리니에 의해 대서특필되었고, 그가 이탈리아의 대소 참전을 군단 규모에서 완편의 야전군(이후 제8군, ARMIR)으로 확대하기로 결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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