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이탈리아의 위신, '시인'의 허영, 그리고 여자의 가슴… 가장 어리석은 공격!

이탈리아의 위신,  시인 의 허영, 그리고 여자의 가슴… 가장 어리석은 공격!

가브리엘레 단눈치오(Gabriele d'Annunzio)는 기괴한 역사적 인물이다. 광신적인 이탈리아 민족주의자이자 파시즘의 선구자였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무능한 군 지도부가 이탈리아 병사들에게 저지른 끔찍한 범죄의 도덕적 가해자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피값으로 치른 우직할 정도의 낭만주의자였던 그는 대위 신분으로, 이탈리아군에게 재앙이었던 제10차 이손초 전투 직후 '위신 공격(prestige attack)'이라는 작전을 구상했다.

제10차 이손초 전투와 '위신 공격'의 탄생

제10차 이손초 전투는 1915년 5월부터 같은 이름의 강 유역에서 이어져 온 이탈리아의 10번째 연속 공세로, 1917년 5월 12일에 개시되었다. 이탈리아군은 병력과 화포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고 초기에는 진격에 성공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군은 반격으로 이들을 저지했고, 상실한 지역 대부분을 되찾았다.

5월 28일, 단눈치오의 제안에 따라 오스트리아군이 장악한 트리에스테 해안 도로 인근 산 조반니(San Giovanni) 지역에서 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이 지역 오스트리아군의 핵심 거점은 28고지였다. 이 고지는 티마보(Timavo) 강 동쪽에 위치했으며, 해당 지점의 강폭은 약 30m에 불과했다.

새로운 실패로 크게 훼손된 이탈리아의 위신을 세우는 데 늘 열망하던 단눈치오는 순수하게 선전 목적의 공격을 구상했다. 이탈리아 대대 하나가 강을 건너 28고지를 점령하고, 적이 점령한 두이노(Duino) 마을까지 2km의 개활지를 돌파해 그곳의 폐허가 된 성을 차지한 뒤, 거대한 이탈리아 국기를 게양해 트리에스테의 '억눌린 이탈리아 형제들'이 이를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된 작전

순전히 공상과학에 가까운 발상이었지만, 악명 높은 루이지 카돌르나(Luigi Cadorna) 장군 휘하의 이탈리아 군 지도부는 엄청난 명성을 지닌 '시인', '애국자', 군인이자 비행사인 단눈치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공격은 1940~41년 그리스와의 분쟁 당시 그리스에도 알려졌던 '토스카나 늑대들(Tuscan Wolves)' 제77연구소 소속 대대가 라다치오(Radatzio) 소령의 지휘 아래 수행하기로 결정되었다.

공격은 처음부터 실패가 예정되어 있었고 성공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 포병 지원조차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쌍한 이탈리아 병사들은 드럼통과 판자로 만든 폭 40cm의 조잡한 부교를 건너야 했다. 라다치오 소령은 당연히 이 어리석은 시도에 반대 의견을 냈다. 설령 작전이 성공하더라도 트리에스테는 폐허가 된 성에서 20km나 떨어져 있어, 망원경으로만 이탈리아 국기를 볼 수 있다는 현실적 근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신도 단눈치오에게 소령은 단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일 뿐이었다. 작전 취소가 논의되자, 단눈치오는 대위라는 하급 장교임에도 즉시 상급 사령부에 호소했고, 작전이 시행될 이탈리아 제3군 사령관 아오스타 공작(Duke of Aosta)마저 그를 지지했다.

참담한 결과

작전이 개시되자 라다치오 소령의 우려는 최악의 형태로 현실이 되었다. 격렬한 포화 속에서 일부 이탈리아 병사들은 일렬로 서서 다리를 건너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보고 움직이기를 거부했고, 장교들에게 '이유 없이 학살당하는 것은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일부는 무기에 흰 손수건을 묶고 오스트리아군에 항복하기까지 했다. 강을 건넌 부대 중 포로로 잡히지 않은 생존자들은 격렬한 포화 아래 다시 그 좁고 초라한 다리를 건너 돌아왔다.

물론 대다수는 오스트리아 기관총에 쓸려 나갔다. '용감한' 단눈치오 자신은 물론 강을 건너지 않았는데, 이는 훗날 허위로 보도되어 이탈리아 공식 군사 역사에까지 기록되었다. 단눈치오의 명령으로 정렬한 이탈리아 포로들은 오히려 이탈리아 포병의 포격에 맞아 희생되었다. '시인'은 몇 명의 정열적인 용사만 있으면 자신의 어리석은 계획을 실행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라다치오 소령 또한 치명상을 입었다. 이 참패 이후 이탈리아군의 사기는 더욱 바닥을 쳤고, 다음 날 이 지점에서 이탈리아 대대 하나가 싸움 없이 오스트리아군에 항복했다. 그들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이탈리아 병사들은 적보다 자신들의 장교에게서 더 큰 위험에 놓여 있었고, 오스트리아군은 오히려 이탈리아군에게 자살 공격을 멈춰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죽어가는 소령과 '시인'의 냉혹함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죽어가던 라다치오는 단눈치오에게 그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독약을 요청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시인'은 "그가 고통받아야 죽음의 불멸 속에서 삶이 장엄해질 것"이라며 이를 거절했다.

단눈치오는 어느 순간 '저 겁쟁이들', 즉 공포에 질린 얼굴의 생존 병사들이 자신을 총으로 쏘거나 총검으로 찌를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에게 닿는 모든 이탈리아의 총알과 창은 다이아몬드로 변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공격 전야, 단눈치오는 트리에스테 출신의 기혼 정부(情婦)의 가슴을 꾸었다!

이탈리아의 위신,  시인 의 허영, 그리고 여자의 가슴… 가장 어리석은 공격!

군복을 입은 '시인' 단눈치오.

이탈리아의 위신,  시인 의 허영, 그리고 여자의 가슴… 가장 어리석은 공격!

특별한 포즈를 취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