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상 가장 뛰어난 보병연대 중 하나로 꼽히는 프로이센 제6척탄병연대. 이 연대는 특히 7년전쟁 기간 동안 영광으로 가득한 흥미로운 역사를 남겼다. 1675년 창설된 이 연대는 처음에 두 개 대대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잠시 후에는 군주 프리드리히의 근위연대가 되었다. 1677년에는 포메라니아에서 스웨덴군과 싸웠고, 1686년에는 신성동맹 연합군에 합류하여 헝가리에서 오스만 튀르크군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대동맹전쟁에서는 프랑스군과 맞서 카이저스베르트, 본, 라우체, 스테인케르케, 나뮈르, 겐트, 우덴나르데 등 주요 전투와 공성전에 차례로 참여했다. 이어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서는 사보이아 공작 외외느가 이끄는 연합군에 합류해 유명한 블렌하임 전투(1704)에도 출전했다. 1710년에는 소위 '붉은 훈장(Rote Orden)'이라 불리는 부대가 창설되었는데, 그 지휘권은 훗날 프리드리히 대왕의 아버지가 되는 프로이센 왕세자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넘겨받았다. 이 대대는 프로이센 보병 전체가 훈련해야 할 본보기가 되는 모범 부대로 자리매김했으며, 연대에 통합되었다.
척탄병 연대로의 개편
1740년 훗날 '대왕'이라 불리는 프리드리히 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연대에서 두 개 대대가 분리되어 다른 부대와 합쳐졌다. 그중 하나는 명성 높은 제15근위연대로 들어갔다. 제6연대는 단 하나의 대대만 남게 되었지만 연대 호칭은 유지했으며, 척탄병 부대로 개편되었다.
이후 이 대대는 왕실근위 제15연대의 세 개 대대와 함께 근위여단(Guards Brigade)을 구성했다. 여단은 1745년 호엔프리트베르크 전투(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즉 제2차 슐레지엔 전쟁)에서 뛰어난 전과를 올리며 184명의 사상자를 냈다. 같은 해 조르(Soor) 전투에서는 근위여단이 적 진영의 중앙을 돌파하는 대활약을 선보였다. 1756년 7년전쟁이 발발할 당시 이 대대는 폰 레츠오프(von Retzoff) 대령의 지휘를 받았고, 1760년부터는 폰 잘덤(von Zaldem) 소장이 지휘를 맡았다. 당시 이 대대는 총 864명을 운용해 프로이센군의 다른 어떤 대대보다 많은 병력을 자랑했다.
7년전쟁, 영광과 피의 세월
7년전쟁이 시작되자 제6연대는 프리드리히 국왕이 직접 지휘하는 군에 배속되어 작센 침공에 참가했다. 이어 1757년 5월 6일의 처절한 프라하 전투, 로스바흐 전투, 그리고 에파미논다스와 펠로피다스 시대 이래 가장 완벽하게 사선기동(Oblique Order) 전술이 구현된 것으로 평가받는 유명한 라우텐 전투에 참전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제6연대는 라우텐 전투에서 같은 이름의 마을을 사수하며 '용맹의 기적'을 연출했고, 약 27%의 손실을 감당해야 했다.
1758년 10월 14일 재앙적인 회키르히(Hochkirch) 전투에서도 제6연대는 다시 한번 영웅적으로 싸우며 병력의 절반 가까이를 잃었다. 또한 리그니츠(Liegnitz) 전투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1760년 11월 3일 승리했지만 극도로 피비린내 나던 토르가우(Torgau) 전투에서는 약 48%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 7년전쟁에서의 참전은 1762년 7월 부르커스도르프 전투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요새 강습 작전에도 기여했다.
이후 이 연대는 번호가 바뀐 채 나폴레옹 전쟁,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까지 계속 싸워나갔다. 현재 베를린의 경비대대(Wachbataillon)는 바로 이 제6척탄병연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