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발칸의 아우슈비츠" 야세노바츠 수용소, 우스타샤가 자행한 학살의 참상 (충격 이미지 주의)

 발칸의 아우슈비츠  야세노바츠 수용소, 우스타샤가 자행한 학살의 참상 (충격 이미지 주의)

증오의 상징이 된 야세노바츠

악명 높은 '강제 수용소' 야세노바츠(Jasenovac)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남겼으며, 오늘날에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증오를 상징하는 기념비로 남아 있다. 이 수용소는 1941년 8월, 당시 크로아티아 국가에 속해 있던 같은 이름의 마을 인근에 세워졌다.

이곳이 '발칸의 아우슈비츠'라고 불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잔혹함에 있어서는 아우슈비츠에 필적했고, 어쩌면 그 능가했을지도 모른다. 야세노바츠에서 크로아티아 우스타샤(Ustaše) 살인자들은 세르비아인, 유대인, 롬(집시) 등 수만 명을 말 그대로 도살했다.

야세노바츠는 단일 수용소가 아니라, 사바 강과 우나 강 유역에 펼쳐진 210제곱킬로미터 부지 위에 세워진 다섯 개 수용소로 이루어진 거대한 복합 시설이었다. 그중 가장 큰 분소는 '벽돌공장(Brickyard)'이었다.

도살 경쟁까지 벌인 살인자들

크로아티아인들은 일정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겨루는 대회까지 열었다. 1942년 8월 29일 밤, 페타르 브리차(Petar Briča)는 단 하룻밤에 무려 1,360명의 목을 잘랐고, 안테 즐리누시치-시프카(Ante Zrinuzić-Sipka)는 같은 밤 600명을 추가로 살해했다. 훗날 이 사실을 직접 폭로한 밀레 프리가노비치(Mile Friganović) 역시 1,000명 이상을 학살했다고 자백했다.

프리가노비치는 또한, 한 노년의 세르비아인에게 "파벨리치 만세!"를 외치게 하기 위해 가한 고문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그는 노인의 귀와 코를 잘랐고, 눈을 파냈으며, 심장 높이에서 가슴을 갈라 마침내 후두를 절단했다. (안테 파벨리치는 크로아티아 우스타샤 범죄 정권의 수장이었다.)

체계화된 절멸의 방식

끔찍한 살인은 야세노바츠 안에서만 멈추지 않았다. 크로아티아인들은 보통 3년 미만의 형량을 선고받은 건강한 성인 남성들은,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외의 수용자들은 전원 처형 대상이었다. 체계적인 절멸 방식은 분소마다 달랐는데, 크로아티아인들이 가장 선호한 방법 중 하나는 직접 지은 특수 화덕, 즉 크레마토리움에서 시신과 함께 수용자들을 산 채로 태우는 것이었다. 동시에 독일군이 시험했던 가스실을 이용한 절멸 방식도 함께 사용되었다.

그러나 수작업 학살이 더 만연했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칼은 물론 톱과 끌까지 온갖 도구를 동원하며 병적인 상상력을 발휘했다. 사바 강변의 그라니크 선착장에서는 연속 20일 밤낮으로 사람들이 도구로 머리를 내려찍혀 살해되었고, 시신은 강물에 던져졌다. 이후에는 더욱 잔혹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희생자들을 두 사람씩 묶어 배를 칼로 가른 뒤 강에 던져 넣어, 고통스럽고 느리며 비참하게 죽어가도록 만든 것이다.

여성과 아이들에게 가해진 잔혹 행위

그란디나 분소에서는 대형 망치로 내려쳐 죽이는 방식이 선호되었으며, 수천 명의 롬족이 그곳에서 절멸당했다. 므라카(Mlaka)와 얌 지역에서는 주로 여성과 아동들이 살해되었다. 많은 여성들이 가슴을 잘렸고, 임산부들은 배가 가르진 채 태아가 찢겨 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끔찍하게 죽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인들에게 이것은 자랑스럽게 감행한 '성스러운 임무'였다. 많은 이들이 절단된 인간의 신체 조각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자랑스럽게 차고 다녔다.

목격자의 증언

"우리는 낡은 공장 안에 있는 수용소에 들어섰다. 끔찍한 환경… 곳곳에서 비명과 울음, 통곡 소리가 들렸다… 가장 참담했던 것은… 약 50명의 아이들이 있던 방이었다. 절반은 이미 죽어 있었고, 나머지도 죽어가고 있었다…" — 독일과 크로아티아 국가 사이의 연락관을 맡았던 독일(오스트리아) 출신 장군 폰 호르텐나우(von Hortenau)의 보고이다.

야세노바츠에서 살해된 정확한 숫자는 지금까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추정은 70만 명의 희생자를 언급하며, 어떤 자료들은 140만 명의 사망자를 주장하기도 한다. 최근의 연구들은 희생자 수를 상당히 낮게 잡지만, 어느 수치를 따르든 그곳에 만연했던 공포의 실상과는 무관하며, 이곳은 크로아티아 역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얼룩으로 남아 있다.

 발칸의 아우슈비츠  야세노바츠 수용소, 우스타샤가 자행한 학살의 참상 (충격 이미지 주의)

사바 강변에 버려진 크로아티아인들의 희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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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칸의 아우슈비츠  야세노바츠 수용소, 우스타샤가 자행한 학살의 참상 (충격 이미지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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